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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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황금초

2022-07-23 (토) 윤재현 / 연방정부 공무원 은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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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화초를 심을까요. 주택조합 매니저가 묻는다. 우리 주택단지로 들어오는 정문 양쪽에 끝이 노란색 화초를 심어주십시오. 나는 그 화초의 이름을 모른다. 알겠습니다. 그 화초를 ‘선샤인 리구스트럼’이라고 부릅니다. 선샤인은 좋은데, 리구스트럼은 무엇을 뜻하나.

다음 날 아침에 현관문을 열어보니 앞뜰에 선샤인 리구스트럼 네 포기가 나란히 서있다. 집주인에게 선을 보이는 듯했다. 내 맘에 들었다. 우리 집 식구가 된 것을 환영한다.

아랫도리는 시퍼런 화초인데 위로 올라가면서 노란색으로 변했다. 노랗다 못해 금빛이다. 나는 황금초(黃金草)라고 이름을 붙였다. 그럴듯한 이름이라고 생각한다. 보면 볼수록 대견하고 매력이 있다. 햇볕을 좋아한다. 그래서 선샤인이라고 부르는가보다. 물도 좋아한다. 물을 주면 방금 목욕탕에서 나온 아가씨의 어깨처럼 해말갛고 청순하다.


이 황금초는 풀이면서 꽃이다. 꽃이며 풀이다. 항상 녹색 그리고 황금색으로 등대처럼 주위를 밝혀준다. 이 풀꽃은 옆의 무궁화와 장미꽃과도 잘 어울린다. 벌레와 진드기가 잘 끼는 무궁화나 잠깐 요염한 자태를 나타냈다가 떨어지는 장미와 다르게, 항상 아름다운 금빛 광채를 발산하고 있다.

어제 홈 디포에 가서 황금초의 묘목을 사다가 형들 옆에 심었다. 아우가 잘 자라도록 보살펴주기를 바란다. 너희들은 우리 집 간판이다. 물과 거름을 주었더니, 주택단지 정문에 있는 황금초보다 색이 훨씬 더 노랗다. 화초 가꾸기는 정성과 정비례된다.

아침저녁으로 걷는 나의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전화를 들고 나가서 요한 스트라우스의 라데츠키 행진곡을 들으면서 걷는다. 우리 집 현관 앞을 지날 때는 행진하는 사병이 지휘관에게 경례하듯 황금초와 눈을 맞춘다.

걷지 않는 날이 많다. 누우면 죽고 걸으면 산다는 말이 있는데, 왜 걷기 싫을까. 사람은 본능적으로 게으르다(?) 걷지 않으려고 요리조리 꾀를 부린다. 시간이 없다. 날씨가 너무 덥다, 춥다, 바람이 분다, 신발이 불편하다.

나는 요즘 낮잠 자는 버릇이 생겼다. 오후에 ‘고양이 잠’을 자지 않으면 피곤해서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우리 집 아래층과 이층에는 넓이 3자, 길이 7자의 양탄자가 깔려있다. 이 위에 베개를 베고 누우면 너무 편안해서, 어느 대통령이나 갑부가 부럽지 않다. 그렇지만 눕는 것은 내 무덤을 파는, 다시 말해서 명을 단축하는 습관이라고 한다.

나에게 채찍을 들었다. 일어나 걸어라. 오늘도 라데츠키 행진곡을 들으면서 또 황금초와 눈 맞춤을 하면서 걷는다. 누우면 죽고 걸으면 산다.

<윤재현 / 연방정부 공무원 은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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