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사들이 쓰는 단위 중 ‘꼬집’이라는 말이 있다.
한동안 백종원을 비롯한 여러 쉐프의 요리 동영상을 즐겨보았다. 그때 알게 된 말이다. 꼬집이라는 말을 고집스럽게 놓지 않는 분들이 있었는데, 어느 날부턴가 그 낯설고 생경한 말이 마음 밭을 맴돌기 시작했다. 나도 음식을 할 때마다 ‘설탕 반 꼬집, 소금 한 꼬집’ 하며 소리 내어 쓰다 보니 어느새 정이 들었다. 습관처럼 해왔던 내 행동에 새로운 이름을 명명 받은 기분이랄까, 재밌고 새로웠다.
꼬집은 손가락으로 꼬집듯 식재료를 집은 양을 말한다. “한 꼬집은 엄지와 검지로 꼬집듯 집어 올린 양이다.”라고 말하는 이도 있고, “아니다. 그건 반 꼬집이고 엄지와 검지, 중지를 이용해 꼬집듯 잡은 양이 한 꼬집이다.”라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 누구의 어떤 말이 맞는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어차피 사람마다 손 크기가 모두 달라서 정량이라고 할 수 있는 기준이 없으니 가타부타 따지고 고집부릴 필요가 없는 것이다.
영어에도 꼬집에 해당하는 말이 있다. “A pinch of~”이다. 핀치는 엄지와 검지로 조금 집어 올린 양이다. 보통은 계량컵이나 숟가락을 사용하고 음식을 만들다 조금 부족하여 추가할 때 손가락으로 집어넣는다. 그건 동서양이 같은 모양이다. 꼬집의 매력은 ‘적당히’가 아닐까 싶다. 그러니 자기 방식대로 적당량을 집어 음식만 잘 만들면 될 일이다.
꼬집이란 말은 몰랐지만, 엄지와 검지로 양념을 집어 간을 맞추는 일은 오래전부터 해 온 일이다. 뚜껑에 구멍이 숭숭 나 있는 소금 통은 당최 소금이 나오는지 안 나오는지도 잘 모르겠고, 한꺼번에 훅 쏟아져나와 음식이 소태가 되기도 해서 차라리 두 손가락으로 집어 골고루 솔솔 뿌리는 게 편했다. 계란프라이가 그랬고, 김을 잴 때도 그랬다. 내 손만큼 내 적당량을 아는 도구는 없었다. 볶은 통깨도 굳이 절구에 빻아 깨소금을 만들어 쓰지 않아도 두세 꼬집 정도는 손가락으로 비벼서 부숴가며 쓰는 게 편했다. 살림을 오래 하다 보니 손이 저울이고 눈이 계랑 컵이어서 계량 도구를 사용하지 않아도 어지간하면 간이 맞았다.
밥을 하다가 ‘결혼 초부터 지금까지 부엌에서 보냈던 시간을 합산하면 총 몇 시간이나 될까?’ 하는 생각이 뜬금없이 들었다. 시금치 삶는 법을 몰라서 처음부터 물에 넣고 푹푹 삶았던 새댁이 무로 열 가지 넘는 음식을 할 줄 아는 고수가 되었으니 짧은 시간은 아닐 것이다. 음식 만드는 게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무엇보다도 내가 만든 걸 맛있게 먹어주는 이들이 있어서 실력이 빨리 늘었던 것 같다. 부엌 안에서 이룬 업적은 많은데 부엌 밖에서 이룬 게 별로 없다. 아직도 음식 만드는 게 싫진 않은데, 이번 생에 내 꿈을 이루고 갈 순 있을까 하는 생각에 이르면 단전에서부터 부아가 끓어오른다. 그럴 때마다 내가 부엌에만 안 들어갔으면 나라도 구했을 거라고 너스레를 떨곤 한다. 어쩜 그런 말을 얼굴색도 안 변하고 그렇게 잘하는지 내가 생각해도 참 민망하다. 그래도 한때 박장금이란 소리를 들었으니 그걸로 위안 삼아야 할 것 같다.
음식을 하다 보면 더도 덜도 아닌 딱 소금 한 꼬집으로 간이 해결될 때가 있다. 물론 사람마다 양의 차이는 있을 것이다. 손가락 끝으로 조금 집을 수도 있고 덥석 집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 양을 아는 건 자기 자신이다. 오랜 경험은 필요한 양을 정확히 잡게 만든다. 노하우 역시 실패가 쌓여 축적된 결과치여서 마찬가지다. 망쳐보고 실패해봐야 얼만큼을 넣어야 할지 감이 오는 것이다. 음식을 잘한다는 건 결국 간을 잘 맞추어 가는 일이다. 아무리 보기 좋은 음식도 간이 맞지 않으면 손이 안 가는 법이다.
꼬집은 국어사전에 없는 말이다. 하지만 언젠가는 표준어로 등록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이 많이 쓰기도 하고 예쁜 말이기도 하니까. 꼬집과 비슷한 말로 자밤이라는 말이 있으나 옛 소설에 등장했을 뿐 실생활에선 거의 쓰지 않는다. 그러나 날개가 나래, 냄새가 내음, 돌담이 흙담, 목물이 등물로 함께 쓸 수 있게 된 사례처럼 사람들이 편하게 사용하는 말이 표준어로 추가되곤 하니 주시하며 기다려볼 참이다.
문학을 한다는 사람이 사전에도 없는 말을 굳이 쓴 이유는 꼬집이 주는 역할과 느낌이 좋아서였을 것이다. 대수롭지 않은 사적인 이야기에 뭔가 한 꼬집 넣어 간이 맞는 글을 쓰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글도 간이 맞아야 맛있다. 그 한 꼬집이 사랑일지, 감성일지, 자책일지, 칭찬일지, 독설일지, 아니면 희망일지 아직은 나 자신도 알지 못한다. 다만 내 언어의 꼬집들이 독자가 공감하게 될 신의 한 수가 되어주길 바랄 뿐이다. 아무쪼록 내 언어의 꼬집들이 뭔가를 꼬집어 뜯는 게 아니라 한 꼬집 넣음으로 모자라거나 넘치지 않게, 고집스럽지 않게, 그리고 훈훈하고 잘 어우러지도록 버무려주는 역할을 해 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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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애 시인·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