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정권의 ‘대사증후군’ 부르는 ‘끼리끼리’

2022-07-05 (화)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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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의 말로를 걸은 박근혜 정권은 ‘끼리끼리’로 시작해 ‘끼리끼리’로 마침표를 찍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박근혜의 정치를 관통해온 것은 원칙과 신뢰가 아니라 ‘끼리끼리’였다. 자신의 입맛에 맞고 색깔이 똑같은 인물들만 곁에 두고 중용했다. 탄핵을 당하고 대통령 자리에서 쫓겨날 상황에 처했을 때조차 그랬다.

변호인단은 철저히 같은 색깔의 인물들로만 채워졌다. 마치 ‘친박 정치인’들 같다는 세평이 뒤따랐다. 만약 박근혜가 냉철하게 법리를 따질 줄 아는 유능한 변호인단의 조력을 받았더라면 구속까지 가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 법률전문가들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주변에는 다른 관점에서 상황을 파악하고 객관적인 조언을 해줄 만한 인물들이 전혀 없었다.

정권 초 인선부터 그랬다. 철저히 친박·극우 성향의 특정지역 출신들만 중용했다. 청와대 참모들조차 군인들과 법조인 일색으로 꾸렸다. 인적 구성에서부터 사고와 배경의 다양성을 고민한 흔적은 전혀 찾아 볼 수 없었다. 자기 말에 절대 토를 달지 않고 심기를 먼저 헤아려 행동에 나설만한 인물들로만 채워졌다.


‘끼리끼리’는 위험하다. 그리고 비효율적이다. 다양한 형태의 투자클럽들의 수익을 분석한 한 연구는 흥미로운 시사점을 던져준다. 분석 결과 구성원들끼리 사교적으로 끈끈하게 얽히고 동질적인 배경과 가치로 맺어져 있을수록 수익률이 낮았다. 반면 이견과 논쟁의 항시적으로 허용되는 클럽일수록 수익률은 현저히 높았다.

비슷비슷한 것으로만 구성된 조직은 활력과 창의적인 사고를 기대하기 힘들다. 같은 배경과 성향으로만 구성된 ‘순종 집단’이 이끌어 가기에는 편할지 몰라도 조직 내에서의 견제와 균형 그리고 토론은 실종된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동조와 복종, 그리고 침묵이 들어서게 돼 있다.

윤석열 정부 출범 후 이어진 인사의 행태를 보면 우려를 금할 수 없다. 특정 성향과 특정 직군 인물들의 편향이 너무 두드러지기 때문이다. 대통령을 보좌하는 최측근 대부분이 뉴라이트 출신들이다. 이명박 정부 시절 그의 정치적 기반이 됐던 뉴라이트 출신 정치인들과 학자들이 대통령의 눈과 귀가 될 핵심 보직을 도맡은 것이다.

이런 획일적 정치 성향보다 더욱 위험해 보이는 것은 대통령의 지나친 검사 편애이다. 검찰총장에서 곧 바로 대통령이 된 인물의 등장으로 ‘검찰공화국’에 대한 우려가 컸던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이런 우려는 쓸데없는 기우가 아니었음이 확인되고 있다.

금융 감독원장에 최초로 검사 출신을 앉히는 등 권력 요직에 검찰 출신들을 잇달아 임명했다. 검찰 시절 그와 가까웠던 이른바 ‘윤석열 사단’의 막내까지 알뜰히 챙겼다. 그러면서 대통령은 ‘능력주의’를 내세운다. 하지만 그의 인식에서는 통합과 균형 그리고 다양성에 대한 고민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이런 행태에 여당 안에서조차 우려와 비판이 제기된다.

심지어 국기를 흔들고 한 인간과 그 가족의 삶을 송두리 째 파괴하는 극악한 범죄인 ‘간첩조작’ 사건에 연루돼 징계를 받았던 ‘최악의’ 검사까지 요직인 대통령실 공직기강 비서관으로 임명했다. 도가 지나칠 정도로 ‘내 사람’에게 경도된 그 맹목적성과 무감각이 놀라울 따름이다. 새 정권이 출범하자마자 뜬금없이 북한에 의해 피살된 공무원의 월북여부가 갑자기 쟁점화 되고 있는 현 상황은 이런 식의 인사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근친상간적 증폭’(incestuous amplification)이란 군사용어가 있다. 위기 상황에서 동일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의 의견을 강화해주고 그러다 극단으로 치닫게 되는 현상을 이른다. 미국이 베트남 전쟁의 수렁에서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닉슨의 정치적 몰락을 초래한 워터게이트 스캔들 역시 유유상종 인사들로 구성된 이너서클이 초래한 비극이었다. 균형을 상실한 식단이 건강을 해치듯 다양성과 이견은 철저히 외면한 채 입맛에 맞는 특정 정치세력 그리고 특정 직군의 인사들만 중용하고 편애하는 정권에게는 필연적으로 ‘대사증후군’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 그러면서 권력은 병들고 국민은 고통 받게 된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와 관련한 비판이나 언론의 지적이 나오면 예외 없이 “전임 정권도 그러지 않았느냐”는 논리와 이유를 갖다 댄다. 그러니 트집 잡지 말라는 얘기인데, 새로운 기치를 앞세우며 방금 출범한 정권의 태도로는 보이지 않는다. 전임 정권의 잘못과 실수를 ‘반면교사’로 삼겠다는 자세와는 너무 거리가 멀다. 출범한 지 고작 2개월도 되지 않은 정권의 지지율이 왜 40%대 초반에서 허우적대고 있는지 깊은 성찰이 있어야 한다. <논설위원>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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