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낙태 찬성과 반대 사이에서

2022-07-05 (화) 최상석 성공회 주임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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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24일 연방대법원은 ‘임신중지(낙태) 권리 합법화 판결’을 폐기하였다. 이에 따라 낙태권 존폐의 결정은 주정부로 넘어가게 되었다. 이 판결은 낙태 문제를 둘러싸고 광범위한 찬반 공방을 일으키고, 한국을 비롯 유럽 여러 나라에서도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무릇 세상에 쉬운 문제가 없지만 낙태 문제는 참으로 어렵다. 낙태와 관련한 문제의 복합성 때문이다. 낙태 문제는 도덕적, 생명윤리적, 의학적, 철학적, 법적 성찰을 필요로 하며 종교적 판단도 요청된다. 무엇보다 임신 당사자의 건강상태, 심리적 경제적 상황은 물론이요 준비되지 않은 임신이나 성폭력에 의한 임신 등의 경우에 대하여 충분한 고려도 포함되어야한다.

낙태 문제는 강 건너 불처럼 멀거나 나와 무관한 일이 아니다. 남성과는 무관한 여성만의 문제도 아니며, 가임 연령대의 젊은이들만의 문제도 아니다. 낙태의 현실은 지금 여기 바로 가까이에서 매일 일어나고 있는 우리 모두의 문제이다. 한 연구소의 2020년 미국의 낙태건수 통계는 약 90만 명으로 발표되었다. 이러한 엄청난 통계는 낙태가 한 개인의 도덕적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윤리 경제 문화 등 모든 것들이 결부된 전체의 문제임을 보여준다.


낙태 곧 임신중지를 둘러싼 복잡한 논쟁의 핵심은 태아도 인간이기에 태아의 생명권을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과 (발달단계의 태아는 아직 온전한 인간이 아니며) 여성의 몸에서 일어난 임신에 대하여 여성 스스로 임신중지를 선택할 수 있다는 여성의 자기 결정권 주장에 있다.

낙태를 적극 반대하는 사람들은 종교적으로는 기독교인들이 많은데 로마가톨릭과 정교회가 가장 강력하게 반대하며, 개신교에서는 보수적 교파들의 기독교인들이 반대하고 있다. 성공회 역시 성폭력에 의한 임신이나 태아로 인하여 임산부의 생명이 위협을 받을 때 등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임신중지를 반대한다. 정치적으로는 대개 공화당원들이 낙태를 반대한다. 태아는 하느님이 주신 생명 곧 인간이기에, 낙태는 살인에 해당한다는 주장이다.

낙태를 찬성하는 사람들은 자기 결정권을 주장하는 여성들과 이를 옹호하는 남성들이며, 정치적으로는 주로 민주당 사람들이다. 이들의 주장은 임신중지에 대한 결정은 자신의 책임적인 판단에 따라 당사자인 여성이 해야 한다는 것이다. 신체의 자율성과 헌법에 보장된 개인 기본권의 주체인 여성이 선택할 수 있는 권리라는 주장이다. “내 몸은 나의 선택”이라는 낙태 찬성 여성들의 구호가 이를 말해준다.

낙태 결정 권한을 주정부에 맡긴 이번 판결은 여러 문제를 가져올 수 있다. 공화당이 우세한 주정부는 낙태를 불법화하거나 극도로 제한할 것이다. 이는 인생에서 여러 가지 이유로 고통스럽고 슬픈 낙태의 현실에 노출된 여성들, 특히 상당한 비율을 차지하는 가난하거나 소수 유색인종에 해당되는 수많은 여성들에게 심리적, 사회경제적 고통을 줄 것으로 우려된다.

또한 미국인으로서 임신중지 권리가 개인의 도덕적 양심이나 신앙에 바탕을 둔 자율적 판단이 아니라 그가 살고 있는 지역의 정치지형에 좌우되고, 주정부의 선거 결과에 따라 낙태권이 왔다갔다하는 참으로 무책임하고 우스꽝스러운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옳고 그름’에 대한 윤리적 잣대도 시대의 제한을 받는다.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 결정권, 이 두 가치의 대립은 쉽게 정리되기 어려울 것이다. 임신중지의 문제, 참 어렵다. 우리 모두의 사회적 숙제이다. 이번 판결을 계기로 생명의 존엄성과 여성의 자기 결정권에 대하여 깊은 연구와 성찰이 이루어지고, 대화와 사회적 논의를 통하여 더 생명을 존중하고 더 기본권이 지켜지며 더 따뜻한 세상으로 나아가기를 희망한다.

<최상석 성공회 주임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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