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의 ‘7.4 남북공동성명’이 50주년을 맞이한다. 성명의 골자는 “외세에 의존하거나 외세의 간섭 없이 자주적으로 해결하여야 한다. 서로 상대방을 반대하는 무력행사에 의거하지 않고 평화적 방법으로 실현하여야 한다. 사상과 이념 및 제도의 차이를 초월하여 우선 하나의 민족으로서 민족적 대단결을 도모하여야 한다”라는 것이다.
여기에 더하여 상호 중상, 비방, 무력도발 금지, 남북한 간 제반 교류의 실시, 적십자회담 협조, 남북 직통 전화개설, 남북조절위원회의 구성과 운영, 합의사항의 성실한 이행 등으로 이루어졌다. 이 공동성명은 남북 분단 당시부터 통일이 완성되는 그날까지 어느 한 구절 토씨 하나 더하고 뺄 것도 없는 완전무결한 명문이라는 데에 이의를 달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이 공동성명의 정신과 의의는 잊혀져가고 무슨 ‘선언’이니 ‘결의문’이니 따위들이 소란스럽다. 무슨 말인가. 남북이 각각의 이해관계로 통일의 정도를 벗어나 계속 엇박자 충돌을 거듭해왔다는 소리이다. 한민족 역사에 찬연히 기록될 이 공동성명의 가르침을 현실화하지 못하고 있는 우리 세대의 타락과 아둔함이 가슴을 때린다.
남북 현황을 보라. 미, 중, 러, 일 4대 강국이 한반도를 둘러싸고 탐낭취물(探囊取物), 자기네 소유의 물건 다루듯 하고 있지 않은가. 그들에게 시달릴수록 우리는 그들을 증오하기 이전에 스스로의 과오를 반성하고 새 각오를 다져야만 하는데, 남북 정권이 영 딴 길로 제각각 줄달음치고 있지 않은가. 북·미간의 불신도 핵문제 해결에 가장 큰 난제다.
남한은 빈곤 탈피에 성공을 거두었으나 미중 사이에서 발언권이 거의 맥을 못 추고 있는 상태다. 분별없이 북한 정권과 거래를 트다가 분통 터지는 압력이나 받는 것이 일상화돼버린 상태다. 도무지 한국의 통일 기본 정책이 뭔지 일관된 지침을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다.
한편 북한 정권은 핵무기에 모든 명운을 걸고 있다. 북한도 핵 보유 국제 공인으로 영구집권, 남한 적화 수단으로 삼자는 야욕 이외에 그들의 확실한 통일 방안을 알 길이 없다. 북한의 구호는 주체사상, 수령 절대주의, 체제보장 요구 등으로 초점이 변화무쌍해 상대하기가 어렵다. 인민 탄압과 극심한 경제난으로 인해 인민봉기를 방어하는 수단으로라도 핵무기를 끝까지 소유하려는 의도만이 드러나고 있을 뿐이다.
북한인들 핵 포기 대가로 경제상황이 좋아지고 남북대화도 긍정적 방향으로 진척될 수 있다는 것을 모를 리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대외교류 활성화로 인해 인민들의 민주화 요구가 증폭되는 것을 매우 겁내고 있다. 그들은 일단 핵보유국으로 국제공인을 받고 김정은 일가의 무한 집권, 체제보장만 받을 수 있다면 국경을 모두 걸어 잠그고 고립무원 상황이 돼도 ‘우리 식대로’ 가겠다는 주장이다.
김정은의 극한 상황 줄타기 모험으로 긴장감을 늦출 수 없는 게 한반도 현 상황임을 부정할 수 없다. 여기서 우리는 실낱같은 희망이지만 과거 김대중 대통령의 ‘4대 강국 보장하의 남북 연방제’를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고 제안하고자 한다. 김대중의 이 제안 이후 북한이 문을 열고 정상회담 등 일시적이나마 대화의 물꼬를 튼 적이 있다. 음미해볼 만한 업적이다. 연방제도는 평등주의 원칙이기 때문에 상대방 정권 체제에 간섭할 수가 없다.
7.4 남북공동성명 채택 50주년, 아직도 북진통일, 한미동맹 해체, 핵 협박 친중노선, 북핵 인정, 이따위 시대에 뒤떨어진 그리고 황당한 사고를 가진 자들이 기고만장 설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고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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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용 전 한민신보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