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졸업시즌이다. 지구 한 코너에서 계속되고 있는 전쟁도, 인내심의 한계를 저울질하며 3년째 동거하고 있는 팬데믹도 잠시 뒷전으로 밀어낸다. 아이들의 졸업식 날이기 때문이다.
며칠 전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졸업하는 두 손자의 졸업식에 다녀왔다. 큰 손자의 중학교 졸업식에는 무장한 경비원이 눈에 띄었지만, 초등학교 졸업식에는 어린아이들에 대한 배려로 눈에 안 띄는 곳에 배치되었는지 경비원이 안 보였다.
드디어 캠퍼스 뒤쪽에서 학부모들 사이로 졸업생들이 앞으로 걸어나오며 예식이 시작됐다. 아이들이 한명씩 높은 단상 앞으로 올라가 앉는 동안 부모들은 오랜만에 아이들을 만난 듯 자리에서 일어나 저마다 사진을 찍느라 야단법석이다. 국기에 대한 맹세 등 예식이 끝나고 10살 11살짜리 졸업생들이 한명씩 걸어나와 군중들 앞에서 지난 5년 동안 초등학교 삶에서의 가장 인상 깊었던 일들을 간단히 발표했다. ‘정글 북’ 연극 출연, ‘밴드’ 멤버 활약, ‘오징어 해부’ 경험에 이어 무서운 ‘유령의 집’을 참관했었던 일 등을 열거하면서 거의 모든 학생들이 빠짐없이 언급한 말은 “친구”라는 단어였다. 잊지 못할 그들의 기억 속에는 한결같이 친구가 함께 있었고, 그 친구라는 존재가 그들의 삶에서 빠질 수 없는 행복의 조건이었던 것.
중학교 졸업생들도 개인보다는 오케스트라부, 미술부, 스포츠 그룹, 컴퓨터 프로그램부 등 역시 혼자가 아닌 그룹에 속한 일원으로서의 존재감을 강조했다. 혼자서는 행복해질 수 없는, 더불어 사는 존재임을 초중학생을 통해 재확인한 셈이다.
마지막으로 교장 선생님은 도전할 때 절대 포기하지마라, 억지로라도 웃어라, 참여하라(get involved), 다른 사람을 존중하라, 황금룰 즉, 상대가 너에게 해주기를 원하는 대로 너도 상대방에게 행하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이 5가지는 졸업생뿐만 아니라 더불어 살아가야할 우리 모두에게 주는 권면의 말씀이었다.
요즘 나는 중고등학교 동창 101명 채팅방과 미국 내의 20명 채팅방을 방문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하얀 칼라의 교복을 입었던 네가 나 같고 내가 너 같은 단발머리 친구들을 손때 묻은 옛 동창수첩으로 다시 확인하며 그들과 삶의 지혜와 기쁨을 나누고 있다. 수십년 전 학교는 졸업했지만 친구와는 졸업이 없이 평생 더불어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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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찬옥 샌프란시스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