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월 5일경이면 발간되는 모국 대학 총동창회 회보가 9일인데도 아직 소식이 없길래 서울 사무국의 최국장에게 문의했더니 며칠 늦었지만 곧 나올 예정이라는 답장을 받았다. 나는 지난 4년간 샌프란시스코 베이지역 동창회장으로 봉사하면서 매월 동창회보를 받으면 지역의 선후배들에게 이메일과 카톡으로 전달하는 일을 해왔던 터이다.
우리가 이역만리 이곳 미국 땅에서 꿋꿋하게 뿌리내리고 잘 적응해 살아갈 수 있도록 지식과 인의예지 품성으로 우릴 가르치고 키워준 고마운 모교였기에 학교가 국내외적으로 유명세를 타면서 조금씩 발전해 나가는 소식을 접하는 것은 참 즐겁고 흐뭇한 일인 것이다. 때로는 지역 동문들이 귀찮을(?) 정도로 자주 소식도 전하고, 발전기금을 마련한다며 펀드레이징도 매년 해서 일부는 떼어 본교에도 장학금 등의 명목으로 보내기도 하는 등 나는 바쁜 일과 중에도 우야든동 짬을 내어 최선을 다해 4년간의 연임 임기를 비교적 대과 없이 잘 마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16년 후배로 이곳 실리콘 밸리에서 IT 컨설팅 일을 하는 유능한 후배에게 지난 3월 바톤을 물려줄 수 있었던 것은 참으로 다행한 일이었다. 성공적인 세대교체가 이루어진 만큼 그동안 다소 아쉬웠던 젊은 동문들의 참여가 활발해질 것을 상상해보니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그동안 나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에 익숙했던 선배들은 다소 서운한 표정도 지으시지만 어쩌겠는가, 때가 되면 내려놓아야 하는 것을.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나니.
까톡! 최국장이 금새 또 뭔가를 보내왔기에 열어보니 낯익은 거리의, 그러나 슬픈 사진이다. 향년 95세… ‘88년부터 무려 35년간 전국노래자랑의 사회를 맡아 지난달 최고령 TV 음악 경연 프로그램 진행자로 기네스북에 등재되기도 한 국민 MC 송해 선생님이 어제 돌아가셔서 종로구 낙원동 당신의 흉상이 있는 길에 설치된 빈소에 그가 직접 조문하고 찍은 사진이다. 선생님의 마지막 가는 길을 하늘도 슬퍼하는지 비가 뿌리는 가운데 수많은 사람들이 빈소를 찾아 그의 죽음을 애도하고 있다.
숫자로만 보면 95세 이시니 천수를 누렸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지만, 이리 황망히 가실 줄은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불과 열흘 전 건강 이상으로 입원했다는 보도가 나왔을 때만 해도 누적된 피로가 회복이 되면 곧 퇴원하시겠거니 했었다. 아무리 고령이라도 훌훌 털고 병상에서 일어나 다시 한번 마이크를 잡고 우리를 즐겁게 해주시거나, 방송은 더 못하시더라도 최소한 후임자 선정을 위해 방송국과 협의는 이어가실 거라고…
참으로 허망한 것이 인생이다. 우리도 언제 어떻게 홀연히 가게 될지 모르는 일인데 마치 영원히 죽지 않을 사람인 것처럼 아등바등 살고 있는 것은 아닐지 생각해본다. 나는 사는 날까지 주위의 좋은 사람들과 흉금을 털어놓고 이야기하며 보듬어주고 옆에 있어도 그리워하며 그렇게 아름답게 살다가 가고 싶다.
구봉서, 배삼룡 등 당대 최고의 희극인과 함께 하는 친근한 조연이었지만 61세의 나이로 ‘88년 전국노래자랑 MC를 맡기 전까지 그가 살아오면서 겪은 말 못할 생활고, 그리고 외아들마저 교통사고로 먼저 보낸 슬픔 등으로 점철돼 웃어도 웃는게 아니었을 선생님의 인생을 생각해 보면 그는 촉촉한 푸른 이끼가 등걸을 빼곡 뒤덮고 있는 크릭사이드의 한그루 삼나무였다. 내가 여자 탤런트 전인화나 격투기 선수 추성훈의 부인인 야노 시호의 왕팬이라고 말하는 것이 하등 이상할 것이 없었으면서도, 어쩌다 누이들로부터 10여년전 돌아가신 어머니가 생전 1살 연하인 송해 선생님의 수십년 왕팬이었다는 사실을 무슨 비밀이라도 되는 것처럼 들을 때마다 나는 새삼스러웠었다. 송해 선생님은 평생을 하루같이 도곡동 자택을 나서 걸어서 버스와 지하철로 갈아타고 낙원동 사무실로 출근하며 단골 해장국집에서 60여년간 2,000원짜리 국밥을 드셨다고 한다. 떡집, 악기상가, 그리고 줄리엣 역의 올리비아 핫세가 로미오역의 레오나드 위팅과 키스하던 장면에서 ‘꼴깍’ 침 넘어가는 소리를 들킬세라 숨죽이고 영화 보던 19살적의 나를 추억 속에서 되찾을 수 있는 헐리우드 극장도 있어 서울 갈 때마다 들르곤 하던 낙원동 그 길에서 다행히 나는 3년전에 그 해장국을 먹어볼 수도, 인근의 거리에 선 선생님의 흉상도 직접 볼 수가 있었던 것이다.
“전~국, 노래자랑! 딩동댕동댕” 이제는 더 이상 당신의 구수한 목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된 우리는 말할 수 없이 슬프다. 당신이 우리에게 선물해준 커다란 즐거움 이젠 누가 대신할 지… 태평양에 가로막혀 직접 조문할 수 없는 나는 마음속으로나마 선생님의 영전에 엎드려 명복을 빈다. 선생님 천국에서 평안히 쉬세요. 오랜 세월 당신과 함께할 수 있어서 우리는 너무 행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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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환 팔로알토 부동산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