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늘 하루 이 창 열지 않음닫기

[앵콜 클래식] 5th & 6th

2022-06-03 (금) 이정훈 기자
크게 작게
음악 이야기를 씀에 있어서 숫자는 때때로 신선한 해방감을 안겨주곤 한다. 그 때만이 유일하게 문자의 감옥에 해방되는 순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늘 언어와 문자로 이루어진 사고의 감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살아간다. 어떤 시인은 말하기를 비밀이 없는 사람은 재산이 없는 사람만큼 비참하다고 했다. 자기만의 비밀과 암호, 그리고 수수께끼 숫자들… 사람은 잉태된 뒤 5개월부터 어머니의 뱃 속에서 소리를 분별할 수 있게 된다고 한다. 소리는 눈으로 보는 것 이상으로 영혼을 자극하는 감정의 원동력이기도 하다. 슬플 때 음악을 듣는다는 것, 기쁠 때 춤을 춘다는 것 모두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음악은 노력하여 얻는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선물이기도 하다. 음악을 통해 감사를 느끼고 영혼의 치료를 느낀다면 그것은 특별하다기보다는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인지도 모른다. 예전에 베토벤의 교향곡 6번이 수록된 LP 레코드를 샀을 때 그것은 단순히 한 장의 물질로 이루어진 플라스틱 LP판이 아니었다. 그 속에는 음으로 새롭게 펼쳐지는 대자연의 모습, 풍경화 그리고 음의 내밀한 표현으로 재편된 또 다른 우주가 있었다. 물론 그것은 단순히 한 음악가가 스케치한 자연에 대한 인상과 노래일 뿐이었지만 인간이 음악으로 도피할 수 있고 또 새로운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는 것은 메마른 삶에서 한줄기 소나기요 비밀, 축복이기도 했다.

5th & 6th. 영어로 다섯 번째, 여섯 번째 순서라는 뜻으로 별 의미 없는 숫자다. 그러나 음악사에서 5번과 6번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상징하고 있다. 바로 베토벤의 교향곡 5번과 6번 때문이다. 로망롤랑은 말하기를 베토벤의 교향곡 5번과 6번 없는 세상은 무지개 없는 하늘같다고 했다. 바로 이 두 작품이 시사하는 상징성 때문이다. 역사상 이 두 작품만큼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안겨 준 작품도 드물었다. 1808년 12월22일은 이 두 작품이 같은 날 동시에 발표되었던 생일이기도 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하다는 두 작품이 같은 날 동시에 발표되었다는 사실도 매우 드문 사례 중의 하나였지만 정반대의 성격을 가진 이 두 작품이 동시에 인류에게 크게 사랑받게 됐다는 점 또한 우연치고는 보통 우연이 아닐 수 없는 일이었다. 초연 당시에는 거칠고 과격했던 5번보다는 6번 ‘전원’이 더 호평을 받았다고 한다. 고전 음악의 특성상 부드럽고 점잖은 선율 때문이었다. 그러나 1년 반 뒤 악보가 출판되고 다시 연주되었을 때는 5번의 인기가 더 하늘을 찔렀다고 한다. 바로 운명 교향곡이 안겨주는 낭만주의의 격정, 이념을 초월한 자유와 투쟁의 의지로 가득한 선율 때문이었다. 특히 5번은 당시 프랑스를 휩쓸고 있던 혁명의 열기와 맞물려 프랑스에서 가장 열광적인 환영을 받았는데 프랑스 뿐만아니라 2차 세계대전 중에는 5번의 주제선율이 영국 처칠 수상의 연설 때마다 배경음악으로 사용됐다고 한다. 바로 승리를 상징하는 요소 때문이었다.

베토벤은 1808년 12월22일 밤 비인에서 열린 ‘아카데믹이’라는 자신의 음악회에서 5번, 6번 교향곡 그리고 무려 8개의 작품을 한꺼번에 발표했다. 장장 4시간이 걸린 마라톤 연주회는 당시의 관행상 크게 이상할 것은 없었지만 하필 한 겨울의 추위가 문제였다. 당시 베토벤을 좋아했던 팬들은 베토벤이 야심차게 추진한 연주회의 음악을 듣기 위해 홀을 가득 메웠는데 난방이 되지 않아 4시간 동안 오돌오돌 떨면서 음악을 들어야만 했다고 한다. 특히 마지막 ‘코랄 환타지’ 연주에서는 오케스트라가 엉망이 되면서 베토벤의 고함소리와 더불어 연주가 중단되는 등 참담한 관경이 연출됐고 관객들은 고스란히 그 진풍경을 바라보고 있어야만 했다고 한다. 매사에 직선적이고 융통성이 없었던 베토벤은 그 괴팍했던 성격만큼이나 자신의 예술을 피력하는데 있어서도 타협을 몰랐다고 한다. 때문에 주위 사람들은 늘 전전긍긍해 했고 5번과 6번이 발표되던 날에도 오케스트라 단원들과 한바탕 싸움을 벌여 베토벤이 참관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연습을 진행할 정도였다고 한다. 우리들의 위대한 밤밤밤 밤! 교향곡은 이렇게 해서 탄생했다.

참회없는 열정은 오만일지도 모른다. 5번이 정오의 태양이었다면 6번은 서늘한 그늘이요, 석양이었다. 6번 없는 5번 교향곡을 우리는 상상할 수 없다. 6번이 있기에 우리는 오직 하나밖에 모르고 또 그것이 유일할 수 밖에 없었던, 한 음악가의 진실, 오늘날의 ‘운명 교향곡’이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5번과 6번. 별 의미 없는 숫자이긴 하지만 사실 ‘5th & 6th’ 교향곡 만큼 삶에서 도전을 안기는 작품도 없다할 것이다. 누구나 집에는(CD가 됐든 LP가 됐든) 베토벤의 교향곡 5번, 6번 하나쯤은 갖추고 있다. 귀를 위해서든 아니면 영혼을 위해서든 5, 6번 교향곡을 한번쯤 마음으로 되새겨보지 못한 사람만큼 메마른 사람도 없을지 모른다. 1808년 12월22일은 음악사에서도 가장 길고도 추운 밤 중의 하나였다. 그러나 그랬기에 그 날은 더욱(영혼의 귀를 위한) 한 비극적인 인간이 남겨놓은 진실과 그 역사를 바꿔 놓는 변곡점이 된 저녁이었는지도 모른다. 당신에게 있어 5번과 6번은 어떤 모습으로 다가오나요?

<이정훈 기자>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