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물 소리가 맑다. 산란하러 돌아오는 어미 연어들이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는 강가에 앉아, 나는 바다를 생각한다. 강에는 해마다 가을이면 연어들이 바다에서부터 그 먼 거리를 헤엄쳐 상류로 오르는 놀라운 광경이 펼쳐진다. 수천 킬로미터를 역류하여 회귀하는 여정에서 연어는 여울목이나 장애물을 어떻게 뛰어넘을까. 거슬러 사는 삶은 누구에게도 녹록치 않을 것이다. ‘거스를 역(逆)’ 자가 들어간 말치고 이루기 쉬운 단어가 있는가. 그 너머에 있을 성취감을 상상하는 게 원동력이 된다 해도, 역행에 대한 본능적인 두려움이 어찌 없을까.
며칠 전에 엄지손톱 밑에 가느다랗게 거스러미가 일었다. 이 큰 몸집에 비하면 하찮은 것일 뿐인데 조금만 건드려도 쓰리고 따갑더니 그 주위가 발갛게 부어올랐다. 만지지만 않으면 참을 만한데 언제까지 손가락을 움직이지 않고 지낼 것인가. 나의 아픔은 어떻게든 내가 극복해야 할 일이고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일. 손톱깎이로 거스러미를 잘라냈다. 딸깍 소리 한 번으로 아픔도 잘렸다. 삶에서 겪는 슬픔도 고통도 이렇게 단박에 끊어버릴 수만 있다면.
거스러미는 말 그대로 흐름을 거슬러서 생기는 아픔이다. 피부 조직의 결이 다른 부분과 반대 방향으로 엇나가서 고통을 느끼는 것이다. 손톱 밑 거스러미를 보고 있자니 역린이라는 단어가 생각난다. 거스를 역(逆) 비늘 린(鱗). 용의 목에 있는 다른 비늘과는 달리 반대 방향으로 난 것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한다. 손끝에 일어난 대단찮은 거스러미도 그리 아팠는데 용의 목에 거꾸로 선 비늘을 자극하면 그 고통이 어떨지.
역린은 누군가의 드러내고 싶지 않은 아픈 곳을 은유한다. 건드리면 유독 못 견뎌 하는 부분이 어떤 사람에게든 있지 않을까. 학벌이든 지위든 외모든 경제력이든, 극복하지 못한 콤플렉스가 하나쯤은 있을 수 있다는 얘기다. 한올져 지내는 사이라 해도 아물지 않은 상처를 건드리면 도지게 마련이다. 마지막까지 감추고 싶은 결핍이 어쩌면 그 사람의 역린인지 모른다. 수치스럽게 생각하는 열등의식을 함부로 자극하면 결국은 화를 입는다는 말은 상대가 아파하는 점이 무엇인지 살피고 배려하라는 뜻이리라.
역린은 건드리는 것이 금기시되는 상징적 의미 외에, 물고기가 용이 되기 위해 비늘을 세우고 급류를 올랐던 흔적이라고도 전해온다. 용이 되어 하늘에 오를 수 있다는데, 얼마나 많은 물고기가 급물살을 거슬러서라도 상류에 올라가고 싶었을까. 또 얼마나 많은 물고기가 좌절하고 포기해야 했을까. 급류에 휩쓸려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비늘을 거꾸로 세우고 올랐다니 그 안에 함축된 의미를 짐작하게 된다.
목표를 향해 급류를 거슬러 오르는 물고기의 행보가 한낱 기술일 수 없는 것처럼, 내가 들어선 문학의 길에서 글 한 편 완성하는 과정도 그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비늘을 세워 간신히 오른다 해도 누구나 다 용이 될 수는 없을 터. 역리를 택하거나 순리에 몸을 맡기기에 앞서 나 자신에게 묻는다. 이름을 빛내는 용이 되어야만 하는가. 그것을 위해 비늘을 세울 일인가. 청춘의 가장 빛나는 시간의 강물을 지날 때는 나도 한때 그랬을 것이다. 용이 되고 싶던 적도 있고 목표를 위해 물길을 헤엄쳐 오르는 꿈도 가졌으리라. 평온한 물속에서 비늘 세울 일 없이 늙어가는 나. 욕심과 열정도 줄어, 흐르는 강물에 고단한 마음 풀며 내려간다. 너른 바다에서 가슴의 이름표 떼고 익명의 물고기 되어 살아간들 어떠랴 싶다.
내가 생각하는 문학은, 거스러미나 역린뿐 아니라 어떤 이유로든 넘어지거나 주저앉은 이들에게 손 내밀어 일으켜주며 같이 아파하고 눈물 흘릴 줄 알아야 한다. 물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고 바다로 흘러드는 평범한 물고기들을 지켜보는 애정 어린 시선이 등 뒤에 머문다. 이제 알 것도 같다. 비록 더디더라도 여러 곳을 두루 거치며 천천히 내려가야 마음에 보이고, 보여야 공감할 수 있으리라는 것을. 나의 글이 내 삶의 테두리를 넘어서서 타인에게 울림을 주고 작은 아픔을 덜어줄 수 있으려면 얼마나 먼 길을 굽어 돌며 흘러야 할까.
강물 따라 구불구불 내려가니 여유롭다. 목소리 높여 빨리 가야 한다고 재촉하는 이 없이, 자연과 함께 어울려 가는 이 길이 정겹다. 낮이면 햇빛 부서지는 윤슬에 취해도 보고 밤이면 별빛 달빛에 젖기도 하는, 꿈같은 물길이다. 그렇게 얻은 삶의 여유로 주위의 나뭇잎 하나 돌멩이 하나에 생긴 작은 상처에도 따듯한 눈길 주면서 흐를 수 있다면. 나와 남의 경계를 지우고 무수한 물줄기와 무시로 합하고 나뉘면서, 노래하고 춤추며 흐르는 강물 따라 그렇게 내려갈 수만 있다면.
<
김영수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