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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흥진의 Hollywood Interview] “프로가 아닌 아마추어로 영화를 사랑하고 믿어”

2022-05-20 (금) 박흥진 한국일보 편집위원 / 할리웃 외신 기자 협회(HFPA)원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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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흥진의 Hollywood Interview] “프로가 아닌 아마추어로 영화를 사랑하고 믿어”

‘남과 여’의 한 장면

‘남과 여’의 감독 클로드 를루슈

그윽하게 아름다운 사랑의 영화로 아카데미 각본상과 외국어 영화상을 받은‘남과 여’(A Man and a Woman·1966)를 감독한 클로드 를루슈(84)는 노안에 백발이었지만 눈매는 날카로웠다. 기록영화 감독 필립 아줄레이가 9년간을 를루슈와 함께 살다시피 하면서 이 노장 감독의 예술가로서의 족적과 인간적 경험을 담은 기록영화 ‘슈트 오어 다이’(Shoot or Die)의 상영에 앞서 를루슈를 영상 인터뷰 했다. 아직까지 정열적으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를루슈는 파리의 자기 사무실에서 인터뷰에 응했는데 차분한 자세에 엷은 미소를 지으며 질문에 자상하고 친절하게 대답했다. 를루슈는 프랑스어로 대답했는데 통역은 아줄레이가 했다.

-현재의 영화제작과정이 1966년 때와 어떻게 달라졌다고 보는가.


“어느 때나 영화 만드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1966년과 현재의 다른 점이 있다면 요즘 사람들은 카메라가 부착된 핸드폰들이 있어 누구나 다 보다 쉽게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70억 명의 영화감독이 있는 셈이다. 내가 영화를 시작한 1960년대만 하더라도 우리는 먼저 카메라의 구조와 기능 그리고 필름과 촬영술 등에 대해 배우고 알아야했다. 카메라 다루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 것이 과거와 현재의 큰 차이점이다. 이렇게 기술적인 면이 크게 변화해 이젠 과거보다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기회가 주어지고 있는 셈이다.”

-‘남과 여’는 프란시스 레이가 작곡한 음악으로도 유명한데 그 음악이 영화에 큰 영향을 줄 것으로 알았는지.

“나는 음악을 듣자마자 그 것이 내 영화의 또 다른 하나의 주인공이 될 것이라고 알았다. 그 음악은 영화를 만들기 전에 작곡했다. 음악은 신의 언어로 그 것은 우리의 가슴과 감정에 말하고 있다. 반면에 각본은 우리의 두뇌에 말하고 있다. 나는 이런 이성적인 것과 비이성적인 것 간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음악을 사용하고 있다. 사실 우리가 산다는 것도 이렇게 서로 다른 삶과 죽음이라는 것 간의 균형을 맞추어가는 과정이 아니겠는가.”

-당신은 여러 번 결혼했고 딸도 여럿 있는데 여자들로부터 무엇을 배웠는가.

“나는 그들을 믿고 신뢰한다. 그들은 내게 모든 것을 가르쳐 주었고 나는 모든 것을 여자들로부터 배웠다. 나는 여자들과 함께 있고 그들에게 둘러싸여있는 것을 사랑한다. 신은 남자와 여자를 창조했는데 남자는 잘 못 만든 반면 여자창조에는 성공했다.”

-당신은 아직까지 영화에 대한 뜨거운 정열을 간직하고 있는데 그런 에너지가 어디서 오는 것인가.

“나는 자신을 프로가 아닌 아마추어라고 생각한다. 나는 흥행 위주의 시장 때문이 아니라 영화를 사랑하고 또 그 것을 원하기 때문에 영화를 만든다. 사람들이 신을 믿듯이 나는 영화를 믿는다. 나는 언젠가 그 누군가가 불후의 명작을 만들어 세상과 인간성을 바꾸어 놓으리라고 믿는다. 신을 믿는 사람들이 매일 기도하듯이 영화를 믿는다면 영화를 만들고 또 매일 같이 영화관을 찾아가게 마련이다.”


-요즘 배우들과 감독들은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는 온라인 동영상으로 나가는 미니 시리즈에 나오고 만들기를 좋아하는데 당신도 그런 시리즈를 만들 용의가 있는지.

“나는 TV쇼의 열렬한 팬이 아니다. TV쇼의 제작과정이 예술적이 아니고 산업적이기 때문이다. TV쇼는 매 에피소드마다 감독을 교체할 수가 있다. 요즘 영화감독들은 모든 권위를 상실했다. 요즘은 배우와 각본가와 제작자들의 세상이다. 감독은 노예가 되고 말았다. 그리고 대부분의 TV쇼의 경우 감독은 자신의 뜻이나 견해를 작품에 반영할 수가 없다. 야심 찬 감독들이 자기 견해를 반영할 수 있는 유일한 출구는 극장에서 상영되는 영화를 만드는 것이다. 나는 감독의 독특한 관점을 믿는 사람으로 펠리니가 지금 살았더라도 TV쇼는 안 만들었을 것이다. 인공 지능은 결코 감독들을 대체할 수가 없다. 요즘 영화들을 보면 과거보다 보기 흉한 졸작들이 적기는 하지만 반면에 명작도 보기 드물다. 요즘 영화들을 보면 대부분 그저 그런 것들이 즐비한데 감탄할만한 명작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보다 많은 명화들을 보게 되기를 갈망한다. 우리는 독립영화산업을 살려야하고 또 이와 함께 영화관도 살려야한다.”

-당신은 군에 있을 때 영화를 처음으로 만들었다고 들었는데.

“군이 내가 영화 만드는 것을 배운 첫 영화학교다. 난생 처음 큰 카메라와 진짜 필름 그리고 영화 제작진들과 함께 현장에서 영화 찍는 것을 배웠다. 그리고 출연 배우들은 아주 재능 없는 배우들이었다. 이로 인해 나는 훌륭한 배우들의 중요성을 깨달았고 또 배우들에게 연기지도를 하는 것도 배웠다. 이렇게 많은 것을 배웠지만 군에서 지시하는 대로만 했지 더 이상은 하지 않았다. 내 견해가 전연 반영되지 않는 영화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제대 후 그 누구에게도 복종하지 않는 독립적인 입장이 되면서 자유의 가치를 배웠고 개인의 예술적 자유의 중요성도 깨달았다.”

-요즘은 영화산업 기술이 엄청나게 발전해 특수효과가 판을 치는 만화를 원작으로 만든 블록버스터 영화들이 성행하는데 당신은 그런 영화를 만들 생각이 있는가.

“나는 특수효과가 없는 영화를 만들기를 소망한다. 내가 특수효과를 사용한다면 그 것은 관객을 배신하는 행위이다. 나는 아이들을 위한 만화영화를 제외하고는 특수효과가 있는 블록버스터 영화는 그 어떤 것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영화들은 거짓이다. ‘벤-허’에 있는 전차경주가 진짜라는 것을 누구나 다 안다. 스턴트맨과 말들이 다 진짜로 실제로 말들이 달렸다. 그런데 요즘 특수효과가 있는 영화를 보면 그 것이 다 가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기술자가 스튜디오에서 혼자 기계를 사용해 만들어낸 특수효과는 가짜다. 따라서 난 그런 것에 전연 관심이 없는데 그 것이 내가 배우들을 사랑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배우들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감정을 포착하면 그 것은 사실이고 진짜다. 마블만화를 원작으로 만든 영화들과 특수효과가 있는 영화들은 다 가짜다.”

-유대인인 당신은 요즘 유럽에서 성행하고 있는 반유대주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유대인이라면 반유대주의와 함께 살아야 한다. 따라서 그 것을 수용해야 한다. 난 아버지가 유대인이고 어머니는 가톨릭 신자다. 어쩌면 반유대주의가 그 누구도 기대치 않은 것 이상으로 유대인들에게 더 강한 힘을 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반유대주의가 틀렸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힘써 살아야 할 것이다. 그로 인해 우리는 더 높은 곳에 다다를 수가 있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를 지원하는 사람들보다 적들로부터 더 많은 것을 터득하고 얻고 있다. 내가 훌륭한 비평가들보다 실력 없는 비평가들로부터 더 많은 도움을 받는 것과 같은 이치다. 반유대주의도 이와 마찬가지다. 그 것은 우리로 하여금 무장을 하도록 하고 또 우리를 보다 강하고 좋은 사람들로 만들어주고 있다.”

-당신이 기용한 배우들 중에 특별히 애착이 가는 사람이라도 있는지.

“우리는 모두 사랑이 필요하지만 배우들은 특히 우리들 보다 그것이 더 필요하다. 나는 배우들을 좋아하는데 그것은 그들과 내가 주로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사랑에 관해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들이 사랑하는 것을 행할 때 가장 훌륭하다. 내가 영화를 만들 때 그들과 얘기하는 것은 오로지 사랑에 관한 것이다. 배우들은 아마도 이 세상에서 가장 이질적인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그 것이 내가 그들을 그렇게 사랑하는 이유다. 감독이란 단지 배우들을 돕기 위해 존재한다. 대단히 재능 있고 훌륭한 배우치고 행복한 배우란 없다. 행복한 배우들을 몇 명 만나기도 했지만 그들은 재능이 없는 배우들이었다. 감독이란 배우들의 최고의 의사다. 그들은 우리가 필요하고 우리는 그들을 구원하는 사람들이다. 사람들 특히 여배우들을 구원한다는 것은 아주 즐거운 일이다. 사실 나는 현장에 감독으로서 보다 코치로 있는 것이다. 감독은 훌륭한 운동선수들이 보다 높이 뛰고 또 달리도록 지도하는 코치라고 하겠다.”

<박흥진 한국일보 편집위원 / 할리웃 외신 기자 협회(HFPA)원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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