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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콜 클래식] ‘나비부인’의 두 얼굴

2022-05-06 (금) 이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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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초연 당시 대 실패를 기록한 3대 작품을 꼽으라면 ‘나비부인’, ‘춘희’, ‘카르멘’ 등을 꼽는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이 3작품은 현대에 가장 많이 공연되는 5대 작품에 속하고 있다. 특히 ‘나비부인’은 북미에서 가장 많이 공연되는 작품 중 1위에 꼽히며 전 세계적으로는 ‘춘희’, ‘마적(魔笛)’ 등과 경쟁하고 있다. 위에서 지적한 3작품이 초연에 실패한 이유는 각기 다른 이유와 원인들이 존재하지만 한 가지 공통점은 작품들이 너무 무겁고 지루하다는 점이었다. 공연 횟수가 늘어가면서 이런 문제점들이 자연스럽게 해소되어 명작으로 남게 됐지만 ‘나비부인’ 만큼은 좀 더 다양한 이유들이 존재했다.

오페라 ‘나비부인’은 푸치니가 낳은 최고 서정 오페라 중의 하나였다. 또 다른 경쟁작품 ‘라보엠’도 있지만 ‘나비부인’이 보다 이국적인 분위기로 끌어당기는 맛과 극적인 비애가 가슴에 와 닿는다. 다소 유감이 있다면 소프라노 역에 너무 치중하다 보니 소프라노에 살고 죽는, 줄타기(?) 공연이 너무 많다는 점이다. 무대 변화 역시 너무 밋밋하기 때문에 여간해서는 시각적 몰입도를 이끌어 내기 힘든 작품이기도 하다. 현장 공연보다는 영화로 된 연출 등이 때로 가슴에 와 닿는 것도 이 때문이다.

1904년에 열린 라 스칼라의 초연 당시에도 관객들은 이 밋밋하고 이국적인 분위기의 무대를 별로 맘에 들어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 때의 상황을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기모노를 입은 소프라노가 아리아를 부르기 시작하자 관객들은 야유를 보냈으며 심지어 다음날 신문에서도 ‘나비를 잡아 자루에 넣자’라는 제목으로 푸치니에게 엄청난 모욕을 주었다고 한다. 당시 라 스칼라 극장에서 벌어진 이같은 만행(?)때문에 푸치니는 다시는 살아 생전 자신의 작품을 라 스칼라에 올리지 않았다고 한다.

지난 주는 ‘나비부인’을 보면서 영화, 드라마 등으로는 느낄 수 없는 서정적인 감동을 맛보는 시간을 가졌다. 왜 하필 ‘나비부인’이었을까? 아마도 벚꽃이 그 만개함을 과시하는 계절의 분위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평소 푸치니의 작품은 비디오 영상 등을 통해서는 잘 보지 않는 편이지만 ‘나비부인’만큼은 1995년 영화판이 꽤 알려져 있고 비디오 감상만으로도 많은 감동을 받을 수 있었다. 중국인 소프라노 잉 후앙이 주연을 맡았는데 음악도 좋고 특히 비주얼 측면에서 연출 감각이 크게 호평을 받았던 작품이다. 유튜브에도 나와 있으므로 푸치니를 좋아하는 팬이라면 꼭 한번 보기를 추천하고 싶은 작품이다.


오페라 ‘나비부인’은 자포니즘이 낳은 하나의 환상이었다. 즉 당시 유럽에서 유행하던 일본풍 사조가 그 끝자락을 달리던 무렵, 영국에서 게이샤의 이야기를 다룬 연극 ‘Madam Butterfly’를 본 푸치니 역시 이 작품을 오페라로 만들 결심을 한다. 문제는 일본을 가 본적이 없는 푸치니가 어떻게 일본풍의 오페라를 만들어 그것을 성공으로 이끌 수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무대는 대충 일본식으로 어떻게 얼버머릴 수 있겠지만 서구적인 선율로 일본 정서를 이끌어 내야 하는 음악이 문제였다. 아무튼 푸치니는 무대 감독을 나가사끼에 급파하는 한편 일본 대사관 등을 찾아가 가부끼 등 일본 음악을 다수 익힌 뒤 1904년 라 스칼라 극장에서 초연을 보았다. 초연은 알려진 바 대로 대 실패로 끝났는데 이는 푸치니 자신의 재능만 믿고 여러 극적인 장애 요인들을 간과한 데 있었다.

이 작품은 처음부터 끝까지 ‘초초상’이라고 불리우는 한 게이샤의 죽음에 맞춰져 있다. 그것도 쇼킹하게 할복자살로 끝난다는데 이 작품이 뮤지컬 부류(신파)로 취급받게 된 이유 중의 하나였다. 이 작품은 지적되고 있는 바, 서구 패권주의가 낳은 동양 여성에 대한 성노예 관념이 다분히 깔려있는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할복은 일본 문화에 어느정도 익숙해진 당시 유럽에서 그렇게 쇼킹한 장면도 아니었고 또 푸치니가 이 작품에 할복을 등장 시킨다고 해서 크게 따질 문제도 아니지만 할복자살이 시사하는 바, 일개 게이샤에 대한 지나친 정조관념이 문제였다. (서구)남성 시각에서 본 일방적인 성관념, 여성을 향한 굴욕적인 순종 등은 일본이 비록 지금까지 이를 침묵하고 있지만 동양 전체에 대한 수모이자 치욕이었다.

푸치니는 ‘나비부인’에서 오지않는 핑커턴(남편)을 기다리는 마지막 밤을 허밍 코라스 같은 가장 애절하고 아름다운 선률로 수놓는다. 3년만에 나가사끼에 입항한 군함을 보고 초초상은 부두가 언덕의 집에서 남편을 기다리지만 핑커턴은 결국 그날 밤 돌아오지 않는다. 이미 다른 여인과 결혼을 하였기에 차마 초초를 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운 초초에게 기다리고 있는 것은 그의 친구와 함께 서 있는, 바로 핑커턴의 새 여자였다. 푸치니의 오페라를 사실주의라고 부른다. 恨많은 여인의 삶을 극적 감동으로 이끌려는 의도는 알지만 ‘나비부인’이야말로 푸치니의 사실주의가 낳은 가장 잔인한 살인이기도 했다. 물론 그렇기 때문에 또 사람들은 그 비애를 사랑하는지도 모르지만 사랑에 살고 노래에 살고… ‘나비부인’은 그 음악적 측면에서나 극적 측면에서나 초연 당시나 지금이나 그 아름다움과 어둠이 분명 존재하는 작품이었다.

<이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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