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 오나라와 월나라만큼 사자성어를 만들어내는데 기여한 곳도 드물 것이다. 양자강 인근에 자리잡고 있던 두 나라는 서로 우위를 차지하려는 다툼이 끊이지 않았으며 대대로 원수가 됐다. 두 앙숙이 잠시 같은 목적을 이루기 위해 손을 잡는 것을 두고 ‘오월동주’라 부르는 말은 그렇게 생겨났다.
오나라를 이야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은 오자서다. 초나라 평왕의 태자 스승 오사의 아들이었던 오자서는 왕과 태자간의 불화로 태자가 폐위되고 아버지가 처형당하자 태자와 함께 정나라로 도주한다. 여기서 태자가 반란을 꾀하다 살해되자 이번에는 태자의 아들과 함께 오나라로 건너간다.
오에서 오자서는 이복 동생에게 권좌를 뺏긴 왕족 광을 보좌해 왕을 만드는데 성공하며 광이 합려라는 이름으로 즉위하자 그와 힘을 합쳐 오를 부강하게 만든다. 결국 초를 쳐 굴복시키고 아버지 복수를 이유로 이미 죽은 평왕의 무덤을 파 그 시신에 300번의 채찍질을 한다. 사람들이 너무 가혹하지 않느냐고 비난하자 ‘갈 길은 먼데 해는 이미 기울었다’는 뜻의 ‘일모도원’이란 말을 남긴다.
오나라는 그 여세를 몰아 인근 월나라까지 공격하지만 월왕 구천과 참모 범려에게 패하며 합려는 부상을 입고 사망한다. 합려의 아들 부차는 왕위를 계승한 후 복수의 맹세를 잊지 않기 위해 장작 위에서 자며 힘을 길러 월을 쳐 승리한다. 오자서는 구천을 죽여 후환을 없애라고 간언하지만 구천은 신하를 자처하며 머리를 조아리고 서시라는 미인까지 보내 부차의 환심을 산다. 그러면서 오나라 간신 백비를 매수해 부차와 오자서를 이간질하며 여기 넘어간 부차는 오자서에게 자결을 명한다. 오자서는 “오나라가 망하는 꼴을 보고 싶다”며 자신의 목을 베어 성문에 걸어두라는 말을 남기고 죽임을 당한다.
골칫거리 오자서를 없애는데 성공한 월나라의 구천은 곰의 쓸개를 핥으며 복수심을 불태우며 결국 오나라를 정벌해 부차를 잡아 죽인다. ‘장작 위에 눕고 쓸개를 핥는다’는 뜻의 ‘와신상담’은 여기서 나왔다.
오나라 멸망의 일등공신인 범려는 “고난은 같이 할 수 있어도 영광은 함께 할 수 없다”는 말과 함께 월나라를 떠나며 같은 공신인 문종에게 “새 사냥이 끝나면 활이 필요없고 교활한 토끼가 죽으면 사냥개가 삶긴다”는 말로 칭병과 은퇴를 권하지만 문종은 듣지 않다가 결국 반란죄로 몰려 자결당한다. ‘토끼가 죽으면 사냥개가 삶긴다’는 뜻의 ‘토사구팽’은 여기서 나왔다. 범려는 이름까지 바꾸고 장사꾼으로 변신해 큰 돈을 번 후 안락한 삶을 누렸다 한다.
그 후 300년이 지난 한나라 초기 비슷한 일이 되풀이 된다. 유방의 일등공신인 장량은 유방이 내린 제나라 봉토 3만호를 사양하고 시골로 내려가 살아남지만 같은 공신인 한신은 장군직에 연연하다 처형당한다.
그 후 1,000여년이 지난 조선 초에도 같은 일이 벌어졌다. 이성계의 5남인 이방원은 조선 건국에 가장 큰 공을 세웠지만 후처 강씨의 눈밖에 나 후계 자리에서 밀린다. 방원 입장에서 보면 ‘토사구팽’ 당한 것이다.
그 후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이방원은 자신이 왕이 되는데 결정적 공헌을 한 아내 민씨 가문을 초토화시킨다. 이 과정에서 민씨의 남동생 4명이 모두 목숨을 잃는다. 뿐만이 아니다. 역시 일등공신인 이숙번도 공을 자랑하며 거들먹거리자 가차 없이 숙청당한다. 한번 ‘토사구팽’ 당한 사람이 누구보다 무자비하게 ‘토사구팽’을 한 셈이다.
한국 KBS가 만든 대하 드라마 ‘태종 이방원’이 지난 주말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태조 이성계와 태종 이방원의 이야기는 가장 많이 등장한 사극의 하나일 것이다. 고려를 뒤엎고 왕이 된 이성계와 그 이성계를 쫓아내고 왕이 된 이방원 스토리는 그 어떤 픽션보다 극적이기 때문이다. 이를 소재로 한 ‘용의 눈물’부터 ‘정도전’, ‘육룡이 나르샤’에 이르기까지 모두 이 드라마를 새로운 각도에서 조명하며 인기를 끌었다.
이번에 종영된 ‘태종 이방원’은 권력을 쟁취하기까지와 그 후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이방원이 취한 행동과 그 과정에서 그가 겪은 고뇌를 역사적 사실에 기초해 리얼하게 그려냈다는 평을 듣고 있다. 이방원은 한 때 스승이었던 정몽주와 정도전, 이복 형제와 처가 일족, 심지어는 왕인 세종의 장인까지 무자비하게 죽이지만 혼란한 격변기에서 그런 과단성이 없었다면 권력을 잡기도 유지하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극 중에서 본인 입으로 말하듯이 그의 의식 깊숙한 곳에서는 무력으로 권력을 탈취한 자의 ‘나도 어느 날 갑자기 쫓겨날 지 모른다’는 공포가 자리잡고 있었을 것이다. 드라마 ‘태종 이방원’을 보면서 새삼 권력의 속성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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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