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늘 하루 이 창 열지 않음닫기

꽃이 꽃으로 오던 날

2022-04-30 (토) 최동선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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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주째 주말마다 비가 내렸다. 오늘도 빗방울은 지붕 위에서 그르렁 소리를 내며 미끄러졌다. 가끔씩 앞 뜰 꽃밭에 숨어들던 작은 토끼 한마리가 오늘은 제법 가까이 다가와 웃자란 꽃잎을 훔져간다. 무사히 겨울을 나고 다시 내 집을 찾아왔으니 그까짓 꽃 몇 포기쯤은 너그럽게 내어주어야 겠다고 마음 먹는다. 처마 밑으로 새 한 쌍이 바쁘게 드나드는 걸 보니 올해에도 이곳에 둥지를 틀고 우리와 함께 살 모양이다. 둥지를 만드느라 물어 온 나무가지들로 현관 앞이 지저분해져도 당분간 모른척 하기로 한다. 눈에 띄게 변하는 창 밖 풍경 덕분에 나도 모르게 여유가 생겼나보다.

비가 지나간 자리마다 눈부신 4월의 빛이 쏟아진다. 지난해 아내를 잃은 남자의 집 뜰에도 봄의 햇살이 내려 앉는다. 갑작스런 아내의 죽음 이후로 사내는 문을 걸어 닫았고 그날 이후 사내를 본 적은 없었다. 그 집 앞을 지나갈 때마다 혹시나 무슨 일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으니 차마 문을 두드려 볼 용기를 내지 못했다. 그의 집에는 지붕 높이의 큰 나무가 겨우내 을씨년스럽게 서 있었다. 지나간 겨울 폭풍에 나무 가지가 꺾였는데도 사람 손길이 닿지 않은 채로 방치되어 지나칠 때마다 더욱 마음이 쓰였다. 그런데 사람들이 하루 걸러 내리는 비에 지쳐 갈 무렵 이 나무에게 작은 변화가 생겼다. 죽은 나무라고 여겨져던 나무에서 뾰족한 순이 돋아나고 있었다. 아내는 그날 이후 날마다 그 나무의 변화를 눈여겨 보며 나에게 중계하듯 전해 주었다. 새 순에서 꽃이 되는 시간에도 어김없이 비가 내렸다. 기다림의 시간은 길었으나 그 시간은 끝내 왔다. 아내의 입에서 ‘아 목련이다’ 라는 말이 들려왔다. 어느날엔가는 사내가 닫힌 문을 열고 나왔으면 좋겠다고 말했고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정원을 가꾸고 고개를 들어 나무를 보며 꽃이 피었다고 말하는 그의 얼굴이 그립다.

부활 미사는 성대하지 않았지만 새로 부임한 사제가 집전하는 첫 미사여서 부활 만큼이나 설레였다. 미사가 끝나고 새 신부를 위한 조촐한 환영식이 있었다. 신부님을 위한 성가대의 축하 노래와 신자들의 짧은 환영인사가 끝나자 마이크를 잡은 신부님은 노래로 인사말을 대신하겠다고 하셨다. 50 여년을 교회에 다녔지만 처음 경험하는 일이었다. 기립박수가 터져나왔고 젊은 신부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여러분은 제게 첫사랑입니다. 저는 조건이 없습니다. 무조건 여러분을 사랑하겠습니다. 여러분에 대한 사랑은 온전히 저의 몫입니다.’ 확신에 찬 젊은 사제의 목소리는 오랫동안 내 귀전을 맴돌며 설레게 했다. ‘저는 지치지 않겠습니다. 그것이 제 사랑입니다.’ 라는 말은 신념도 확신도 아니었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의 마음을 전하는 고백으로 들려왔다. 사제에게 고백을 한적은 있어서 고백을 받는것은 처음이었다. 가슴이 뛰는 것을 느꼈다. ‘이 작은 나를 받아주오 나도 사랑하오…’ 나는 가사도 잘 모르는 노래를 하루종일 흥얼거렸고 웃음이 새어 나옴을 참지 않았다. 그는 우리에게 꽃으로 왔다.


코비드로 2년 넘게 닫혀있던 내 마음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무너지고 있었다. 닫고 살았던 탓에 오히려 닫힘에 익숙해져버린 지난 2년간의 삶이었다. 이제 다시 천천히 문을 열고 나서려 한다. 낮은 담장 너머로 하얀 목련이 피었다. 그동안 담 너머에 멀리 서 있는 나무로만 여겨 꽃이 보여도 담장을 넘을 수 없을거라고 생각했었다. 이 믿음은 내가 쌓아 올린 벽이었다. 처음부터 낮은 담장을 두른 것은 꽃을 같이 나누어 보고자 하는 것은 아니었을 까.

마른 가지에 부지런히 물을 길어 올리며 조금씩 생명을 잉태하던 숲에서는 어느덧 어린 잎들이 고사리 같은 손을 펼쳐 하늘을 가리기 시작했다. 소식이 끊긴 지인에게 오늘은 꽃이 피었다고 쓰고 있다. 담 너머로 환히 웃는 그의 얼굴이 그려졌다. 그리고 그가 꽃으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최동선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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