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의 맷집과 대통령의 맷집
2022-04-08 (금)
신율 명지대 정외과 교수
어느 나라 국민들이건 저마다의 특성이 있다. 우리나라 국민들의 특성도 있다. 우선 코로나19 사태에서 나타난 뛰어나게 높은 민도를 들 수 있다. 코로나19에 의한 여러 피해에도 불구하고 보여준 인내와 공동체 의식은 우리 국민들의 민도가 세계 최고 수준임을 증명한다.
우리 국민들의 또 하나의 특성은 피해자에게 강한 동정심과 유대감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피해자에 대한 동정심과 유대감은 정치 분야에서도 유감없이 나타난다. 즉 정치적으로 피해자라는 느낌을 주는 사람, 혹은 가시적 피해를 입고 있는 사람에게 우리 국민들은 전폭적인 지지를 보낸다는 것이다. 그런데 권력에 의해 피해를 당하는 사람의 맷집이 약하면 국민들의 지지를 온몸으로 받아들이기란 어렵다. 맷집이 약할 경우 권력에 의해 존재감이 사라지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그가 시퍼런 정치권력에 의해 피해를 보고 있다고 판단한 국민들의 지지 덕분에 권력의 최고봉에 우뚝 설 수 있었다. 다시 말해서 윤 당선인이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는 권력에 의해 핍박을 당하면서도 강한 맷집을 보여주며 견뎌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살아있는 권력에 당당히 맞섰던 이미지는 코로나19라는 전대미문의 위기에 지친 국민들에게 윤 당선인이 강한 지도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했다.
윤 당선인의 경우 아직까지는 그런 강한 맷집과 권력에 대항하는 강한 리더의 이미지를 가질 수 있는 환경이다. 권력은 아직까지 문재인 대통령에게 있고 인사 문제와 청와대 이전 문제로 윤 당선인 측은 살아있는 권력과 충돌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번 윤 당선인과 문 대통령과의 회동 분위기가 매우 좋았다고는 하지만 회동 이후에도 인사를 둘러싼 논란이 발생하고 있고 여기서 파생되는 양측의 충돌은 과거에 좀처럼 볼 수 없는 양상임은 확실하다. 청와대 이전을 위한 예비비 승인이나 공공기관에 대한 인사권이 문재인 대통령의 권한임은 분명하다. 또한 이런 잡음은 과거 정권에서도 있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현 정권만 비판할 수는 없다.
하지만 문재인 정권은 ‘퇴임할 대통령의 책무’도 상기해야 한다. 그 책무란 퇴임할 대통령은 자신의 권한을 대한민국의 미래와 발전을 위해 행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발전을 위한다면 등장할 권력이 일을 잘할 수 있도록 차기 권력의 의견을 경청하고 되도록 차기 권력이 원하는 방향으로 모든 일을 마무리해야 한다. 또한 현 정권은 그토록 적폐 청산을 주장한 정권이기 때문에 과거의 관행이라고 자신들의 행위를 합리화해서도 안 된다.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할 때는 관행을 들먹이고 상대방이 같은 일을 할 경우에는 적폐라고 규정한다면 이는 새로운 버전의 내로남불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 문 대통령 측은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기에 윤 당선인은 다시금 권력과의 갈등에서 파생되는 피해자의 모습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피해자 이미지는 윤 당선인이 대통령에 당선되면 사라질 수밖에 없다. 권력을 가진 측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권력을 가지게 됐을 때 과거 피해자일 때의 맷집을 과시하면 안 된다는 점이 중요하다. 권력자가 맷집을 과시한다는 것은 국민 여론에 대한 반응성이 떨어짐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또한 맷집과 추진력, 그리고 결단력은 다르다는 점도 명심해야 한다. 추진력과 결단력은 국민적 지지가 바탕이 될 때만 본래의 의미를 가질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대통령이 된 후에는 강한 맷집을 보여줄 것이 아니라 여론에 대한 객관적 판단과 합리적 반응성을 보여줘야 한다. 강한 맷집은 윤 당선인을 대통령으로 당선시키는 데 일조했지만 이제는 그 맷집과 결별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또한 위에서 내려다보는 대통령이 아니라 ‘이 땅’에서 국민들과 함께 호흡하는 대통령의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점 역시 중요하다. 그런 모습들을 보여줄 때 윤석열 행정부는 성공한 정권으로 국민들의 기억에 남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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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율 명지대 정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