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장벽 붕괴, 그리고 뒤이은 냉전종식. 9.11 사태와 테러와의 전쟁. 어떤 사태와 비교해야 되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사태를.
전쟁이 발발한지 한 달이 지난 시점에 미국의 언론을 달구고 있는 화두다.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이 저물어야 날개를 편다고 하던가. 역사의 한 분수령을 이룰지도 모를 주요 사태다. 그런데다가 전쟁이 아직 끝난 것도 아니다. 그러니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나 그 진정한 역사적 의미를 파악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벌써부터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에 대한 판정과 전쟁 이후에 대한 전망이 쏟아지고 있다. 판정은 이미 한 쪽으로 기울고 있다. ‘푸틴 러시아는 이미 패배했다’로.
‘탄약도, 식량도 다 떨어졌다.’ ‘전사한 장성만 6명이 넘고 전사자와 부상자수를 합치면 우크라이나 침공에 투입된 총 병력 15만의 10%가 넘는다.’ ‘러시아군 가용전력이 침공시작 당시에 비해 90% 이하까지 줄었다.’ 전쟁 현장에서 들려오는 소리다.
거기에다가 모스크바에서는 숙청의 바람이 불고 있다. 사령관급 군 장성, 정보기관 수장이 체포되는 등 러시아지도부는 심각한 균열상을 보이고 있는 것.
3일 만에 항복시키겠다는 푸틴의 호언과 함께 전개된 우크라이나 침공이다. 그런데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격렬한 저항에 부딪혀 상황은 정반대로 전개돼왔다. 이와 함께 벌써부터 한 가지 전망성의 진단이 나오고 있다. ‘우크라이나 침공이 어떻게 결말이 나든 관계없이 러시아는 더 이상 열강(Great Power)으로 불릴 수 없게 됐다‘- 내셔널 인터레스트지의 지적이 그것이다.
지오폴리티컬 퓨처스의 조지 프리드먼도 비슷한 분석을 하고 있다.
GDP 1조6,000여억 달러로 한국에도 뒤처지는 러시아는 경제적으로 볼 때 열강으로 분류되기 어렵다. 단지 미국에 버금가는 핵전력을 지녔다는 점에서 그런대로 열강이란 타이틀(?)을 유지해왔다고 할까.
그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에서 어이가 없을 정도로 졸전에 졸전을 거듭, 종이호랑이로 그 실체가 드러남에 따라 열강 타이틀도 박탈 상황에 몰렸다는 것이 프리드먼의 지적이다.
중국의 시진핑이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계획을 알고서도 러시아와의 사실상의 동맹관계를 대내외적으로 선포한 것도 그렇다. 푸틴의 호언대로 3일이면 우크라이나의 항복을 받아낼 것으로 알았다. 그 러시아의 군사력이 베이징의 대 서방 파워 투사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해 내려진 것이다. 그런데 상황은 역전. 러시아는 이제는 한 마디로 중국에 짐만 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제기되고 있는 것은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시대의 재도래’ 가능성이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과정에서 정말이지 형편없는 군사능력을 노출시켰다. 그리고 서방의 단합에다가 전례 없는 고강도 제재를 불러왔다. 이 극적 반전 사태를 목도하면서 베이징도 대만침공의 야욕을 잠시 접을 수밖에 없게 됐다는 것이 프리드먼의 분석이다. 달리 말하면 군사적으로, 경제적으로 당분간은 미국의 시대가 됐다는 거다.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의도와는 정 반대로 미국과 동맹국에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포린 어페어스지의 진단이다.
유라시아대륙의 서부전선에서 발발한 우크라이나 전쟁은 70여 년 전 유라시아대륙 동부전선에서 발생한 한국전쟁과 상당한 유사성을 지닌 것으로 이 잡지는 파악했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공산세력에 대한 경각심이 확산되면서 나토(NATO)가 강화되는 등 서방세계가 결집 됐다. 같은 효과를 70여 년 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불러오고 있다는 분석이다.
역설적으로 W. 부시에서, 오바마, 트럼프에 이르기까지 역대 행정부가 실패한 유럽의 나토동맹국 방위비 분담금 증액을 푸틴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함으로서 일거에 해냈다는 것이다.
세계 4위 경제대국 독일이 국방비를 GDP의 2% 이상으로 늘리기로 한 것이 그 일환으로 독일의 국방비만 러시아의 군비지출을 앞서게 된다. 전체 나토동맹국이 국방비 증액에 나설 경우 EU(유럽연합)는 ‘거대한 안보 파워’로 부상, 유럽의 힘의 균형은 나토 쪽으로 크게 기운다. 유럽의 안보부담을 덜게 되는 미국은 아시아에만 힘을 집중, 효과적인 중국견제에 나설 수 있다는 것이 뉴욕타임스의 분석이다.
다른 말이 아니다. 자유민주주의 가치관에 따른 미국주도 국제질서유지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건 그렇다고 치고, 관련해 또 다른 질문이 새삼 던져지고 있다. 러시아군은 왜 그토록 졸전에 졸전을 거듭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그 답은 전제주의 독재체재가 태생적으로 지니고 있는 약점에서 찾아지는 것은 아닐까. 뉴요커지는 푸틴 러시아체제를 군경(軍警)독재체재로 규정하면서 푸틴은 권좌유지를 위해 ‘우수한 인재가 아닌 용렬한 인재를 일부러 기용하는 일종의 Negative Selection제를 채택하고 있는 것으로 밝혔다.
한국식으로 말하면 능력은 없고 아첨만 일삼는, 그러니까 쿠데타는 언감생심 꿈도 못 꾸는 소인배만 골라 측근에 배치, 스스로 인의 장막에 둘러싸이고 있다는 거다. 그 결과는 무엇인가. 푸틴은 듣고 싶은 정보만 보고 받는다, 그러면서 공사장 십장 역할도 힘든 인물이 국방장관 등 요직에 기용된다. 이게 ‘푸틴 독재 권력의 속살’이라는 이야기다.
여기서 문득 한 가지 생각이 스친다. 시진핑이 이끄는 중국 공산당의 인민해방군 역시 종이호랑이가 아닐까 하는 것이다. 아첨에, 맹종만 하는 소수 측근에 둘러싸인 시진핑. 1인 독재 권력의 속성은 다를 게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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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세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