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자를 벗는 마음
2022-03-26 (토)
김미혜 / 한울 한국학교 교장
중학생인 아들은 후디에 달린 모자를 푹 덮어쓰고 다닌다. 혹시 모자 때문에 후디를 고집하나 싶어서 마음에 들어 하는 모자를 사 주었다. 그러나 모자를 쓰고도 후디를 입고 다닌다. 유현준 건축가의 책 “어디서 살 것인가”에는 힙합 가수들이 후드티를 즐겨 입는 이유를 시선을 차단하고 자신만의 공간을 가지려는 노력이라고 설명한다. 지붕이 있는 공간을 소유하지 못하니 모자나 후디로 대신하고, 주변이 안 보여서 머리를 좌우로 두리번거려야 하는 행동이 힙합의 무브라는 것이다.
지난주일, 아들은 교회 갈 때도 자연스럽게 모자를 쓰고 차에 탔다. 옆에 있는 누나가 모자를 보자마자 대뜸 비판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러자 아들은 성경의 한 구절을 누나에게 읊어주었다. 나는 성경 구절을 기억하고 말하는 것에 마음이 움직여서 말했다. “그래 네 말이 맞아. 사람은 외모를 보지만 하나님은 마음을 보시지”. 아이는 승리자의 얼굴로 모자를 쓰고 다녀왔다.
며칠 뒤 방송에서 애국가가 울려 퍼질 때, 남편은 아들에게 말을 건넸다. “애국가가 울려 퍼지면 사람들은 모자를 벗어 왼쪽 가슴에 대고 국기를 바라보지. 그것이 국가에 대한 예의이자 사람들에 대한 예의야. 모자를 쓰고 벗는 것은 나의 자유지만, 사람들이 어느 때 모자를 벗는지 알아야 하고 내가 벗지 않았을 때 누군가 그것에 대해 의문을 품더라도 너는 그 사람의 마음도 이해해야 할 거야. 지금 우리는 널 충분히 이해하지만 너를 모르는 사람은 그런 행동 하나로 너를 판단할 수 있거든.” 우리는 아이에게 강제로 모자를 쓰지 말라고 말할 생각은 없다. 다만 아이가 예의에 대한 부분은 알았으면 하는 것이고 그것을 가르쳐야 하는 것이 부모의 의무라 여겼다.
시간이 좀 흐르고 아이가 나에게 다가왔다. “엄마, 앞으로는 교회 갈 때 모자를 안 쓰고 가야겠어”라고 말하며 나를 안아줄 때 가슴이 뭉클했다. 강요보다는 스스로 생각하면서 변하는 마음을 전달해 주는 이런 과정이 참 소중하게 느껴졌다. 아이가 모자를 쓰고 가도록 허락하고 스스로 생각할 때까지 기다리기를 잘했다. 중요한 것은 모자를 쓰고 벗고의 문제가 아니다. 만약 내가 강제로 모자를 벗겼다면 아이는 모자를 빼앗겼을지 모르나 그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했을 것이다. 아이가 많은 것들을 시도하고 배우며 자기 생각을 이야기하면서 성장해 나가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 그렇게 한 뼘씩 자라간다고 믿는다.
<김미혜 / 한울 한국학교 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