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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에세이] 연애 케미스트리

2022-03-24 (목) 김 케이 임상심리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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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왜 매번 ‘나쁜 남자’에게 끌릴까? 32살 미혼. 코딩 전문가. 이민 2세 한인 여성 A. 지난번 연애는 손찌검하는 남자, 이번 연애는 술주정 심한 남자다. 10대에는 같은 학교 폭력 서클에 들어있는 남학생이 멋있게 보였다. 그런 남자라면 연약한 자신을 보호해줄 것 같았다. 20대에도 ‘나쁜 남자’를 사귀었다. 인터넷 도박으로 일확천금을 꿈꾸는 무직자. 친구들이 말릴 때마다 머리로는 알겠는데 웬일인지 그와 있는 게 마음이 편하다. 요즘도 블라인드 데이트 상대가 ‘성실’하다거나 ‘좋은 집안’ 출신이라는 말을 들으면 미리부터 가슴이 답답하다. A의 연애 케미스트리는 쓰고 시다.

A는 폭력-이혼 가정에서 성장했다. 부모는 온갖 이유로 매일 밤 물건을 던지고 소리를 지르며 싸웠다. 시퍼렇게 멍든 눈덩이로 어머니는 울며 A에게 말했다. “네가 내 삶의 희망이다.” A는 남자친구에게 집착한다. ‘나쁜 남자’의 ‘나쁜’ 요구를 들어주는 동안에는 어머니가 떠맡긴 삶의 무게를 잠시 잊는다. 그러나 자신의 처지가 실은 어머니보다 더 힘든 상황으로 빠져드는 것 같아 두렵다.

정신분석이론에서는 A처럼 괴로운 과거 경험으로 돌아가는 경향을 ‘반복 강박’이라 부른다. 어렸을 때 경험한 것과 비슷한 상황에 스스로 걸어 들어간다. 행복한 환경을 맞이하면 불안하고 어색하다. 불행한 그림자 안에 머무는 것이 차라리 마음 편하다. 부모가 한없이 측은하지만 동시에 그들을 향한 적개심이 출구를 찾지 못했을 때, 다른 누군가를 통해 스스로 처벌 당하려고 한다. 아버지에 대한 분노를, 남자친구가 자신에게 폭력을 하게 함으로써 자신을 처벌한다. A는 같은 경험을 반복하고 있는 자신을 인식하지 못한다. ‘나쁜 남자’를 만난 것은 자신이 불운했거나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해 미국 초혼 이혼 비율은 41퍼센트. 결혼기간 평균 약 8년이다. (미 인구조사국 통계) 재혼 부부의 이혼율은 60퍼센트로 올라간다. 부모의 이혼을 경험한 자녀들이 훗날 자신의 결혼생활에서 더 많이 이혼할까? 관련 연구결과는 ‘그렇다’고 말한다. 다양한 원인들을 요약하면 두 가지다. 첫째, 부모에게서 성공적인 대인관계 모델을 배우지 못했거나 둘째, 부모의 이혼을 목격하면서 결혼에 대한 가치관이 달라졌기 때문. 부모의 갈등 관계와 결별은 자녀의 책임이 아니다. A의 경우엔 긴 상담과정을 통해 자존감 회복에 집중하는 동안 자신의 ‘반복 강박’ 성향을 이해하게 되었다.

최근 미국과 유럽에서는 ‘싸우느니 이혼이 낫다’는 전제 하에 ‘더 나은 이혼’(Good-Divorce.com) 상담소에 날마다 대기자 라인이 길게 이어진다. 이혼을 하면서도 자녀만은 잘 키우자는 합의가 이뤄지면 ‘패밀리 바이 디자인’ (FamilybyDesign.org) 이나 ‘코-페렌팅’ (Co-Parenting.com) 같은 토탈 이혼서비스 회사에 등록한다. 여기서는 각 분야 전문가가 자녀 양육권 방식 강의, 재산분할 방법 코칭, 이혼 전후 상담, 자녀상담도 할 수 있다. ‘모다밀리’(Modamily.com)에는 아이 가진 배우자를 맞이하기 전, 즉, 새엄마나 새아빠가 되기 전에 알아야 할 실전 사례 교육 프로그램도 있다.

이혼 당사자나 자녀들이 경험하기 쉬운 ‘반복강박’은 지나간 아픈 경험을 무의식적으로 반복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게 치유의 첫걸음. ‘나쁜 남자’들이 운명적으로 내 앞에 나타나는 게 아니라 스스로 그 길을 선택했던 자신을 발견한다. 반복되는 강박적 선택, 자신을 처벌하는 수단이 될 수 없다.

<김 케이 임상심리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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