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지게꾼 이야기
2022-03-21 (월)
나운택 자유기고가
70년대까지만 해도 서울역에는 지게꾼들이 꽤 있어서 지방에서 무거운 짐을 가지고 오는 이들의 짐을 날라주는 걸로 생업을 삼았다. 그러다 언제부턴가 사라지고 지금은 지게꾼을 기억하는 사람조차 드물다. 그런데 이 시대에 아직도 지게로 짐을 날라주는 일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게 신기해서였던지 어느 방송프로그램에서 그를 출연시킨 걸 유튜브를 통해서 보게 되었다. 그는 설악산에서 지게로 짐을 지고 오르는 일을 하는 자칭 ‘설악지게꾼’이다.
열여섯에 지게를 지기 시작해서 45년째 지게를 져왔다고 했다. 육남매중 셋째로 태어나 무척 어려운 환경에서 컸다고 했다. 일찍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초등학교를 5학년에 중퇴하고 남의집살이를 일년 한 후에 설악산 지게꾼이 되었다고 했다. 그 후 직업 선택을 참 잘 했다고 생각하며 45년간 등짐을 지고 설악산을 올랐다고 했다. 설악산 전체가 내 사업장이니 이만큼 큰 사업장을 가진 사람이 또 어디 있겠느냐고 하면서 그는 해맑게 웃었다. 대청봉까지는 25만원을 받고, 비선대, 비룡폭포등 거리와 힘든 정도에 따라 차등적으로 운임을 받는다고 했다. 처음 시작했을 때는 60여명의 지게꾼이 있었다는데 지금은 혼자 남았단다.
그에겐 언어와 지적 장애를 가진 아들이 하나 있다고 했다. 어렸을 때는 집에서 보살폈으나 몸집이 자라 덩치가 커지면서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어서 장애자시설에 보내고 그 후로 아들을 잘 봐달라는 마음에서 그 시설에 먹을 걸 가져다주기 시작했단다. 그렇게 시작된 그의 기부는 점점 늘어나 번 돈은 거의 전부 독거노인, 학교, 장애자보호시설 등에 기부하고 있다고 했다. 지금까지 1억 정도를 기부했지만, 자신을 위해서 쓰는 돈은 너무 아까워 옷들도 거의 모두 얻어 입는다고 했다.
그의 얼굴에는 생활에 지친 모습이나 누굴 원망하는 듯한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뭘 갖고 싶은가? 라는 질문에 아들과 같이 지내고 싶다면서 아들의 이름을 부르며 “미안하고 미안하고 미안하다… 더 이상 아프지 말고… 미안하다.”라고 했다.
방송이 나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45년간 해오던 일을 그만두게 되었다고 한다. 그의 이야기가 방송을 타고 유튜브에 오르자 “그 힘든 일을 하면서 그것밖에 못 받느냐?”라며 그의 운임이 터무니없이 싸다고 성토하는 댓글이 무수히 달렸고, 얼마 후 그 동안 그에게 일을 주던 사람이 미안하지만 더 이상 일을 줄 수 없게 되었다고 했단다.
그 방송을 보는 내내 나도 가슴이 먹먹했다. 그의 일의 고됨에 비해서 임금이 생각보다 너무 싸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생각해봤다. 저 댓글에서 노동착취를 운위하며 거품을 무는 사람들, 국민청원까지 올리고 서명운동을 하는 사람들 중에 자기운임이 너무 싸다면서 굳이 부르는 값보다 더 지불하겠다고 고집할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내가 만약 설악산에서 무거운 짐을 위로 옮길 일이 생긴다면, 운임이 너무 싸다고 그가 부르는 운임보다 더 많은 돈을 지불하겠다고 고집했을까? 어찌 되었든 저 정의로운 사람들로 인해 그 지게꾼은 지난 45년간 일하던 직장을 하루아침에 잃어버렸고, 설악산에는 이제 무거운 짐을 위로 옮겨줄 사람이 없어지고 말았다. 정의롭고 공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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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운택 자유기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