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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국민의 승리’

2022-03-15 (화)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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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한국 대선은 예상대로 윤석열의 승리로 끝났다. 여야 후보간의 지지율은 엎치락뒤치락 했지만 정권 교체를 원하는 국민은 50%대, 유지를 원하는 국민은 30%대라는 여론 조사는 바뀐 적이 없다. 정권을 바꾸기를 원하는 국민이 많은데 정권이 바뀌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어쨌든 불과 1,2년전까지 선거에서 4번 내리져 빈사상태였던 ‘국민의 힘’이 100년 집권을 꿈꾸던 ‘더불어 민주당’을 물리치고 5년만에 정권을 탈환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이번 대선 패배는 기본적으로 민주당이 자초한 것이다. 2017년 박근혜를 탄핵으로 몰아내고 집권한 문재인은 취임사에서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고 했다. 국민을 편가르지 않고 통합의 정치를 하겠다고도 했다. 국민들은 이에 열광했고 41%로 당선된 문재인 지지율은 역대 최고 수준인 80%를 넘어섰다.


그러나 이것이 허상이라는 게 밝혀지는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조국 법무장관 임명 강행이다. ‘개천에서 붕어, 개구리, 가재로 살아도 행복한 세상을 만들겠다’던 조국 일가가 실제로는 자식을 좋은 대학에 보내기 위해 표창장과 스펙을 위조한 의혹이 제기됐는데도 문재인을 그를 법무장관에 임명했다. 결국 그는 몇 달 후 사임했고 그의 부인 정경심은 표창장 등 위조 혐의가 대법원에서 인정돼 현재 복역 중이다.

그러나 이 모든 잘못에도 불구하고 윤석열만 검찰총장에 임명하지만 않았더라면 민주당의 재집권은 무난했을 것이다. 박근혜와 이명박을 잡아넣은 공을 인정해 그를 검찰총장에 임명한 문재인은 그를 “우리 총장님”으로 추켜 세우며 “살아 있는 권력도 엄정하게 수사하라”는 명을 내렸고 윤석열은 월성 원전 수익성 조작, 울산 시장 선거 개입 등 정권의 명운이 걸린 사건을 과감하게 캐기 시작했다. 이에 놀란 문재인은 추미애를 법무장관에 앉혔고 추미애는 검찰총장은 직무 정지와 징계, 사건 관련 검사들은 지방 발령이라는 강수를 뒀다. 그러자 윤석열은 사표를 냈다.

윤석열은 특이한 인물이다. 전두환 서슬이 퍼렀던 1980년대 초 서울 법대 모의 재판에서 그에게 무기 징역을 언도했다. 전두환에 잘못 보이면 삼청 교육대에 끌려가 죽도록 맞는 것은 물론이고 공직은 꿈도 못 꿀 시절이었다.

또 그가 입학했을 당시 서울 법대 입학 정원과 사법 시험 합격자 정원은 모두 150명이었다. 그러던 것이 그가 재학 중 사법 시험 정원이 300명으로 늘었다. 법대 학생이나 교수나 모두 이제 눈 감고도 붙게 생겼다며 좋아했고 실제로 여러 차례 탈락했던 선배들도 대거 합격했다. 그런 상황에서도 윤석열은 8번 떨어지고 9번째 붙었다.

이와 대조적인 사람이 같은 서울 법대 출신인 이회창이다. 법대생 중에서도 수재로 불렸던 이회창은 재학 시절 사법 시험에 붙었고 법관이 된 후에도 고속 승진 가도를 달렸다. 머리도 좋고 선배들에게도 깍듯이 대해 모범생 중 모범생으로 평판이 자자했다. 그런 그는 대통령이 못 되고 수없이 사시에 떨어진 윤석열은 됐다. 이것이 우연일까.

너무 일이 잘 풀리고 칭찬만 받으면 사람은 우쭐해지고 자기가 최고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반면 거듭된 실패를 맛 본 사람은 사회적 낙오자에 대한 이해와 포용력이 생긴다. 이회창이 같은 법대 후배인 이인제나 정치 성향이 비슷한 김종필을 품지 못하고 대선에서 진 것은 정치 경력이 일천한 윤석열이 자기를 대놓고 무시한 홍준표와 유승민, 사사건건 대들던 이준석과 안철수를 안고 대통령이 된 것과 대조된다.

돌이켜 보면 윤석열이 대통령이 된 것은 기적 중의 기적이다. 2019년 그에게 검찰총장 임명장을 준 문재인은 불과 3년 후 그를 차기 대통령 당선자로 만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으리라.

위대한 한국 국민은 이번 대선에서 4번의 연승으로 기고만장해 있던 민주당에 경종을 울리고 정치판의 균형을 잡아줬다. 이번 대선 결과는 2019년 이해찬이 100년 집권론을 얘기했을 때 이미 예고된 것인지 모른다. 2004년 열린 우리당이 100년 집권론을 얘기하다 5년만에 소멸한 것을 보고도 정신을 차리지 못한 것이다.

하늘도, 땅도, 사람도, 귀신도 오만한 것을 싫어하고 겸손한 것을 좋아한다. 주역에 “하늘의 도는 가득 찬 것을 덜어 겸손한 것에 보태고, 땅의 도는 가득 찬 것을 바꿔 겸손한 것으로 흐르고, 귀신은 가득 찬 것을 해하고 겸손한 것에 복을 주며, 인간의 도는 가득 찬 것을 미워하고 겸손한 것을 좋아한다”고 적혀 있다. “오만한 용은 후회한다”는 말도 있다. 윤석열과 ‘국민의 힘’은 끝까지 겸손한 마음으로 국민만 떠받들기 바란다.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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