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26일 ‘한국의 대표적 지성’ 이어령 초대 문화부장관이 별세했다. 향년 89세. 문학평론가, 언론인, 교수, 행정가, 소설가, 시인으로 활동한 분이다. 1956년 22세 나이에 평론 ‘우상의 파괴’를 한국일보에 발표, 당대의 거장 김동리, 이무영 등 문인들을 ‘무지몽매한 우상’이라며 지식의 정확성을 요구했다.
이렇게 문단에 파란을 일으키며 등장한 그는 한국일보를 비롯 여러 신문에 칼럼을 쓰며 당대 최고의 논객으로 활약했다. 20여년 대학에서 후학을 양성했고 초대 문화부 장관으로서 한국 문화정책의 틀을 마련했다.
1972년 월간 문예지 문학사상 창간, 1977년 이상 문학상도 제정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 개 폐회식 총괄기획 위원으로 ‘굴렁쇠 소년’ 아이디어를 냈으며 2000년대에는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접목을 이르는 ‘디지로그’를 말하는 등 문화와 문명에 대한 시각이 남달랐다.
말년에는 삶과 죽음에 대한 성찰의 글을 주로 썼으며 생전에 130권이 넘는 저작을 남겼다. ‘흙 속에 저 바람 속에’, ‘축소지향의 일본인’, ‘디지로그’,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메멘토 모리’ 등은 베스트셀러다. 병세가 악화되어서도 구술로 집필한 유작 30여 편이 출간 대기 중이라고 한다.
최근, 2010년 출간된 이어령의 ‘지성에서 영성으로’를 읽고 있던 중에 부고 소식을 접했다.
“만약 민아가 본 것을 내일 볼 수 있고 오늘 본 내 얼굴을 내일 또 볼 수만 있게 해주신다면 저의 남은 생을 주님께 바치겠나이다. 아주 작은 힘이지만 제가 가진 것이라고는 글을 쓰는 것과 말하는 천한 능력밖에 없사오니 그것이라도 좋으시다면 당신께서 이루시고자 하는 일에 쓰실 수 있도록 바치겠나이다.”는 대목이 가장 눈에 들어왔다. 실제로 아버지의 개신교 세례이후 딸은 실명 위기에서 벗어났다.
그의 장녀 이민아는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지역 검사, 변호사, 목사로 살면서 험한 인생의 질곡을 겪었다. 25세 아들을 원인 모를 돌연사로 잃어버리고 주의력결핍 과다행동장애를 앓는 다른 아들을 힘겹게 돌본 그녀, 3개월 시한부 암 선고를 받고는 치료 없이 살다가 2012년 세상을 떠났다. 무신론자인 그는 딸의 투병 과정에 영향을 받아 2007년 기독교 세례를 받았고 이러한 내면의 변화를 2010년 ‘지성에서 영성으로’에 담아낸 것이다.
한국 최고의 석학, ‘시대의 지성인’이라 불리는 이어령 전 장관, 그를 왜 지식인이 아니라 지성인이라 할까. 지식인(知識人)은 일단 지식이 많은 사람이다. 그러나 사회적 책무나 사회 현실에는 멀고 자신을 부끄러워할 줄 모른다. 지성인(知性人, Intelligent person)은 지식을 활용하여 응용할 줄 아는 사람으로 열린 마음과 생각으로 빠르게 판단, 지혜롭게 사용한다. 지식을 팔지 않고 권력에 아부하지 않으며 자신을 부끄러워할 줄 안다.
여기에서 우리는 대선을 앞둔 한국에 지성인이 있는지 궁금할 것이다. 교수, 교사, 과학자, 언론인, 종교계, 법률가, 예술가들이 지식인이나 지성인에 속할 터인데 대부분 보수와 진보 중 한쪽으로 치우쳐있다. 게다가 일부 언론은 편파적인 보도를 하고 대중들은 여론몰이에 휘둘려서 증오, 편견, 갈등, 대립, 분열에 깊이 빠져있다.
가짜와 비방이 판치는 사회에서 오늘날 한국의 지성인, 논객은 찾기 힘들다. 사실 이런 혼돈의 세계에서는 지성인의 역할이 중요하다. 날카로운 말과 글로 대중의 정신이 번쩍 들게 만드는 지성인, 다양한 시각, 균형적인 눈으로 이 시대를 설명하는 새로운 지성인이 필요하다.
더욱이 후보들의 비호감도가 유달리 높았던 대선이 끝난 후, 누가 대통령이 되던지 ‘무조건 지지’를 외치는 두 진영의 불화와 증오의 정치는 오래 갈 것이다. 이럴 때 사회와 국가에 대해 앞장서 고민하는 지성인, 부끄러움을 알고 올바른 정신으로 말하는 지성인이 나타나야한다. 그래야 민생뿐 아니라 코로나19와 우크라이나 전쟁 등등 세계정세에도 효과 있게 대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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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임 뉴욕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