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전쟁의 위기마저 감도는 가운데 치러질 한국의 대선은 불과 1주일을 남겨놓고 진흙탕 싸움이 점입가경이다. 말 많은 대장동 사건은 자고나면 유력후보 간에 주역을 바꿔가며 공수가 치열한 데다 그들의 부인들은 주가조작만도 모자라 학력위조, 무속논란, 품행시비 그리고 다른 쪽은 법인카드 유용으로… 왜 이렇게 흠결 투성이의 사람들인지 도무지 창피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다.
지도자가 될 사람은 본인과 그 가족에게 좋은 품성과 일정한 도덕 수준이 요구되지만 그에 앞서 국정에 대한 폭 넓은 식견이 필수적인 것은 물론이다. 지금 같이 주변 강대국 사이에서 벌어지는 무력 충돌과 무역 갈등에는 어떻게 대응할 것이며 코로나 이후의 민생과 양극화 해소, 한반도 평화, 기후변화 등 전환기의 과제에는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명쾌한 비전이 있어야한다.
누구도 확실한 선두가 어려우니 중도 층을 향해 보수와 진보가 서로의 영역을 넘나드는 공약을 낼 수는 있다. 세계의 문명사도 진보와 보수,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가 그 벽을 허물고 왕래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 경우 그 변화를 이끄는 정치세력이 어떤 정체성을 갖고 있으며 그것을 받아들이는 수용자 측에서는 얼마나 동의하며 공감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국민들은 정권교체나 정치교체 이후에 그들이 무엇을 개혁할 수 있는지에 대해 냉철한 판단을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선제타격이니 사드 추가배치니 하며 불안감을 부추기는가 하면 색깔 논쟁과 검찰권력 강화, 정치보복을 부르짖던 후보가 어느 날 갑자기 DJ 정신을 말하고 DJ 생가를 방문하는 과욕을 부렸지만 그것으로 표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해다.
김대중 대통령은 독재와 맞서 싸우면서 그들로부터 무수한 억압과 고통을 받았다. 그러나 김대중 대통령을 참으로 ‘김대중답게’ 만든 것은 그가 투쟁과 저항의 상징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생명과 평등과 평화의 보편주의를 지향했다는 점이다. 박해 받은 사람이 자신을 박해했던 사람을 용서할 때 그것은 감동을 넘어 숭고함마저 느끼게 해준다. DJ 정신이란 바로 그런 것이다.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진 전쟁으로 이미 수백 명의 민간인 인명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전쟁은 없어야 한다. 평화는 인류가 추구해야 할 최우선의 가치이며 정의이다. 평생 전쟁 없는 세상을 지향했던 김대중 대통령은 한반도 문제에서도 일관되게 북한의 도발 불용과 평화 공존, 평화 교류를 원칙으로 삼아왔다. 전쟁은 큰 소리 지른다고 억제되는 것이 아니다.
한쪽에서 후보 단일화를, 다른 한쪽에서는 협력 가능한 모든 정파들이 함께 국민 통합정부를 구성하자고 제안했다. 분단국가에서 대통령의 국정 목표는 첫째도 통합, 둘째도 통합이어야 하기에 설득력이 있어 보이나 단일화든 통합정부든 상대를 굴복시키거나 자기이익만 챙기려는 것이라면 성공할 수가 없다.
김대중 대통령이 DJP연합으로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루고 나서 단행한 첫 번째 인사를 보면 그 길이 보인다. 김대중 대통령은 청와대 비서실장에 동교동 가신들을 물리치고 영남 출신 정치인인 김중권 씨를 임명했고 그가 가장 역점을 둔 과제였던 통일부 장관에는 강경 보수인사인 강인덕 씨를 발탁했었다. 통합도 그만큼 절박함과 진정성이 있을 때만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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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현 한민족평화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