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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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가주 한국학원의 야사, 아줌마

2022-02-25 (금) 권정순 남가주 한국학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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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박수근의 그림들을 보노라면 마음이 편안하고 따뜻해진다. 여사라는 말에는 일반적으로 구두와 양장차림의 인텔리전트한 이미지가 떠오르는데, 함지박을 이고 검정 고무신을 신은 그림 속의 여인들을 어머니 또는 아주머니로 정답게 부를 수 있겠다.

남가주 한국학원은 건물 소유 문제로 갈등을 빚어오다가 작년 가을 LA영사관의 간섭에서 벗어나 독립적인 운영을 주장하며, 총영사 지명으로 영입된 이사 퇴진 등 몇 가지 사항의 이행을 촉구하며 새 학기 시작을 미루었다. 두 진영은 전쟁 아닌 전쟁의 양상을 펼쳐갔는데, 어느날 교장선생님들이 “아줌마!”로 불린 적이 있다. 어느 이사 한 분이 당신의 소신을 펼치다가 이런 격앙된 표현을 사용했던 것이다.

맞다! 아줌마들이다. 교장선생님들은 척박한 환경에서 내일을 준비하는 어머니의 마음으로 토요일마다 가족을 뒤로 하고 15년, 30년 동안 한인 2세, 3세 학생들과 함께 했다. 교장선생님들의 이런 억척스러움에서 환란의 역사 속에 가정과 사회를 지탱해온 ‘한국 아줌마들’의 한 모습을 본 듯했다. 어쨌든 새해를 맞이하여 당사자께서 지난날의 언사에 대해 사과의 뜻을 전하신 것 같다.


교장선생님들은 현장에서 교육활동을 펼쳐온 실무자들로서 교육기관 종사자들이 갖추어야할 도덕적 품격을 중시하며, 한국 문화와 한국어 교육의 전문성을 위해 고민하며 목소리를 모았다. 학생들의 뿌리교육의 독립적 운영이란 진정한 정상화를 위해 마지막까지 치열하게 버텨왔지만 이분들의 염원은 관철되지 않은 채 ‘한국학원의 정상화’ ‘내분 마무리’로 기사화되었다. 아무튼 한국학원에 몸 담은 지 불과 6개월도 안 된 이사님들도 교육에 대한 보다 전문적인 안목을 가지고 책임 있게 일하여 남가주 한국학원의 발전에 기여해주실 것을 기대한다.

지난 2월12일 11개 산하 98명 교사들이 주제 강의와 동료장학을 통한 심화 단계의 연수를 받았다. 그동안 격전을 치르고 의욕마저 상실해 보이던 교장선생님들과 교사들은 50년 전통의 물줄기를 흘려보내고자 줌(zoom)으로 다시 모였다. 한국 정부의 분규단체의 일원이었든, 미국 비영리재단의 소속이건 교사의 절대다수인 ‘아줌마’들은 이국땅에 한국의 뿌리를 내리고자 3시간 눈에 불을 켜고 앉아있었다.

<권정순 남가주 한국학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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