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용어로 ‘미필적 고의’란 게 있다. 자신의 행위로 인하여 반드시 어떤 결과가 발생하는 것은 아니지만 발생 가능성을 미리 알고 있었고, 또 그 결과가 발생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심리상태를 일컫는 말이다.
예컨대 민가와 가까운 데서 엽총으로 사냥을 하면 자칫 행인이 맞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발포하고 보니 역시 사람이 맞아 사망하였을 경우이다. 이럴 경우 사냥꾼에게 살인의 고의가 없었던 것은 분명하다고 하더라도 상식적으로 충분히 발생 가능한 결과를 무시하고 행동을 했기 때문에 법적으로 책임을 묻게 되는 것이다.
미필적 고의는 확정적 고의와 과실의 중간단계 정도로 볼 수 있기 때문에 과실범보다는 미필적 고의범을 더 엄하게 처벌하는 게 형법의 원칙이다.
최근 매사추세츠 주에서 남자친구에게 ‘자살 강요’를 한 여학생에게 미필적 고의에 의한 과실치사죄가 적용되어 주의를 끌고 있다. 2019년, 보스턴 칼리지에 재학 중이던 한인 유학생 유인영 양이 18개월간 사귄 필리핀계 남자친구에게 지속적으로 가학적인 문자 폭탄을 보내 우울증에 걸린 남자친구가 끝내 주차 빌딩 옥상에서 투신자살 한 사건이 그 배경이다.
검찰조사 결과 남자친구가 사망하기 전 2개월간 두 사람은 7만5,000 건 이상의 문자 메시지를 교환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유양은 문자 등으로 남자친구의 자살을 요구했을 뿐만 아니라 자살 현장에도 함께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보스턴검찰은 유양에게 과실치사(involuntary manslaughter)법을 적용해 체포했다. 매사추세츠 주의 과실치사법은 ‘타인이 죽을 수 있는 확률이 높은데도 불구하고 죽어도 상관없다’라는 정도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행동도 처벌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2년간의 법정 투쟁 끝에 유양은 작년 12월, 유죄를 인정하고 30개월 집행유예와 사회봉사 300시간을 선고받았다.
매사추세츠 주 검찰은 이번 사건 외에도 이미 2014년 전화 통화와 문자 메시지를 통해 남자친구 콘래드 로이의 자살을 요구하여 죽음에 이르게 한 17세 미셸 카터를 재판에 회부시켜 과실치사 유죄 판결을 이끌어낸 전력이 있다. 피고 미셸은 표현의 자유를 내세우며 연방대법원까지 상고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아 결국 2년6개월의 징역형을 선고받고 형기를 마쳤다.
전국 최초로 매사추세츠 주 검찰이 이처럼 ‘자살 강요’ 사건을 과실치사법으로 적용한 것을 두고 법조계 일각에선 우려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아무리 상대방을 죽음에 이르게 했다 하더라도 표현의 자유가 철저하게 보장된 미국에서 단지 ‘자살해라’, 죽어버려라’와 같은 말만으로 과연 과실치사죄가 성립되느냐는 것이다. 이게 성립된다면 앞으로 상대방을 자살에 이르게 하는 유사 성격의, 인터넷상 언어폭력이나 학교에서 이뤄지는 ‘왕따’같은 사건에도 과실치사죄가 적용될지 눈여겨보겠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미국에서 가해자들로부터 ‘너는 언제쯤 자살할래?’와 같은 놀림과 학대를 견디지 못해 2017년 말로리 그로스맨, 2018년 가브리엘라 그린, 2019년 케빈 리스 등 해마다 어린 학생들이 극단적 선택을 한 바 있다.
유양 사건 이후 과실치사죄가 너무 폭넓게 적용되는 것을 우려한 매사추세츠 주의회는 다른 사람의 ‘자살적 충동’에 대해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그 사람에게 자살을 강요하거나 부추기는 행위’를 할 경우 최고 5년 이하의 징역형을 받게 하는 이른바 ‘콘래드 법’의 법제화를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코로나-19사태로 2년 넘게 아직도 의회에서 발목이 잡혀 진행은 지지부진한 실정이다.
좋은 말만 하고 살아도 짧은 인생살이에서 왜 나쁜 말로 사람을 괴롭히는지, 불현듯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는 우리 속담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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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경락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