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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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만의 방

2022-01-31 (월) 김미혜 / 한울 한국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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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은 케임브리지 대학에서의 식사와 현대적인 여자 학교에서의 식사 경험을 비교하여 서술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울프는 오찬 전에 유서 깊은 케임브리지 대학의 잔디밭을 무심코 밟고 가다가 관리원에게 항의를 듣는다. 당시만 해도 잔디밭은 연구원이나 학자들에게만 허용된 곳이었다. 울프가 걸을 수 있는 곳은 자갈길이었다. 이후 대학교 도서관에 출입하려고 했으나 이 또한 여자라는 이유로 거부를 당한다.

울프는 여성이 문학을 할 수 없었던 이유를 두 가지로 꼽는다. 여성은 돈이 없었고 자기만의 방을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개인 생활이란 없었다. 물질적 어려움도 극심했지만, 비물질적인 시련은 더욱 가혹했다. 철저한 가부장제 사회에서 위축되지 않고 글을 쓰고 남긴 선구자가 없었다면 제인 오스틴과 브론테, 조지 엘리엇도 없었을 것이다.


작년부터 내 방이 없다. 아이가 크면서 방을 같이 쓰던 자매를 독립시키기 위한 결정이었다. 자기만의 방이 없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아는 나는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에 큰 공감을 하였다. 물론 자기만의 방은 공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어느 공간이든 자기만의 쉼을 얻는 곳이라면 그곳이 ‘자기만의 방’이 될 수 있다.

최근에는 거실에 한 공간을 정해놓고 나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물론 전보다는 편하지 않지만, 책과 노트 그리고 노트북이 있는 공간에서 나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나의 엄마에게도 방이 있었다. 어린 시절을 보낸 한옥에는 어느 위치에서든 작업실 방에서 문을 열어놓고 작업을 하는 엄마를 볼 수 있었다. 엄마의 공간을 보고 자란 나는 나만의 공간을 추구하며 산다.

울프는 여성이 자신의 의지대로 자신의 시간을 사용할 권리, 그 작은 권리를 누릴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를 갈망했다. 울프가 고뇌하던 시대보다는 더 많은 기회와 교육, 그리고 여가의 시간이 생긴 것에 감사하다. 책을 읽으면서 나의 서재를 한번 둘러보았다. 펜을 들었다는 이유만으로 주제넘은 동물로 간주되었던 시대에서도 용감하게 펜을 들었던 여성들에게 깊은 경의를 표한다.

<김미혜 / 한울 한국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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