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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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테면 가라지

2022-01-05 (수) 김용현 한민족평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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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염병 3년차의 새해다. 억울함으로 치면 땅을 칠 일이지만 웬일인지 나이가 한 구비를 돌고나니 세월이 지나도 전 만큼 예민함이 없어졌다. 대범해졌다고하기에는 건방진 소리이고 속절없이 빠른 세월 앞에 뻔뻔해졌다고 할까, 항복해버렸다고 할까, 그런 무덤덤한 마음으로 송구영신을 한다.

서울에서 현업 PD로 일하던 30대 후반 ‘인생은 60부터’라는 텔레비전 공개프로를 제작한 적이 있었다. 세월이 몇십 년을 돌아 그날의 ‘인생은 60부터’가 오늘은 ‘인생은 80부터’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러나 그 긴 세월 뭐하다가 뒤늦게서야 ‘다시 시작이니’ ‘제 2의 인생이니’하는 것도 사치스러운 말이다. 오히려 오래 살아 만남보다는 별리(別離)의 아픔만 훈장처럼 많아지는 것을--

그런대로 세월과의 이별은 어느 정도 담담해졌으나 사람과의 별리는 이 나이가 되도록 아직도 익숙하지 못하다. 지난 팬데믹 기간에 고등학교 동창 2명을 비롯해 가까운 이웃 여럿을 잃었다. 장례식에 가볼 수도 없어 발만 동동 구르며 헤어진 안타까운 이별도 있었다. 그리고 또 새해 들어서도 병원과 집을 오가며 힘든 고비를 겪고 있는 친구와 선배도 있다.


지난 연말에는 여러 해 동안 내 눈의 건강을 지켜줬던 안과의사 폴 박이 자기가 공부했던 뉴욕으로 떠난다는 편지를 전해왔다. 그렇지 않아도 지난 가을 여행 갔을 때 뉴저지가 LA에 비해 주거비도 그렇거니와 최저임금이나 세일즈 택스의 격차로 외식물가 등에서 큰 차이가 나 젊은이들이 옮겨 올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갖고 돌아왔는데 며칠 만에 그 예감이 현실로 다가왔다.

때마침 팬데믹 기간 동안 캘리포니아를 떠나는 주민은 증가하고 이사를 오는 인구수가 크게 줄고 있다는 신문 기사를 봤다. 주민들뿐만이 아니라 기업들의 탈 캘리포니아도 가속화돼 지난해 8월까지 74개 기업이 텍사스 등 타주로 옮기고 있다고 한다. ‘가는 사람은 밉상’이라지만 간다는데 어떻게 붙잡으랴,

한국의 싱어 송 라이터 권인하의 노래에 ‘갈 테면 가라지’라는 곡이 있다. ‘갈 테면 가라지, 어차피 외로움은 나의 친구, 붙잡지는 않을 거야’ 라는 가사가 나온다. 그런데 그 다음에 ‘또 올 테면 오라지 어차피 한 순간도 못 견디고, 그리워질 테니까.’라는 말이 있어 이별의 마음에 위로를 준다. 언젠가 나와 헤어질 가족들도 그런 담담함을 가졌으면 한다. 돌아보면 전쟁과 피난과 군사쿠데타에 이어 이민과 지진과 폭동과 거기에 역병의 세월까지-- 그 속에서 이만큼 살아왔는데 하루하루를 은혜로 알고 감사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나비야 청산가자 범나비 너도 가자 가다가 날 저물거든 꽃에 들어 자고 가자’는 옛 시조의 가락처럼 남은 세월 유유자적하며 살아가고 싶다. 그러나 꽃에 들어가 자든 잎에서 자고 가든 끝나는 날까지 살아온 자기의 길에서 벗어나지는 말아야한다고 다짐하고 있다.

좋은 사람으로 알고 뽑아놓은 미국의 바이든 대통령마저도 인류의 공존과 평화에 기여하지 못한 채 저렇게 헤매고 있는 걸 보면 이제 불과 두 달 남은 한국 대선에서 정말 바른 사람이 뽑혀야한다는 생각이 절실하다. 대통령 당선이 목적인 사람이 아니라 국가의 경영능력이 있는 사람, 적대와 증오가 아니라 상생과 평화가 몸에 배어있는 그런 사람을 선택해야 될 것이다.

<김용현 한민족평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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