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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콜 클래식] 스테레오(Stereo)

2021-12-31 (금) 이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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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시간과 물질을 투자하기 마련이다. 나의 경우도 한때 음반이나 스테레오 등에 지나치다할만큼 소모적인 관심을 낭비한 적이 있었다. 음악감상의 본래 목적은 사라져 버리고 음향기기나 음반을 소유하는 것 자체에 그 목적이 변질되어 버린 경우였다고나 할까. 결론을 말하자면, 고급 오디오를 소유한다고 해서 음악 감상의 만족도가 높아지거나 음악이 더 좋아지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CD보다 LP소리를 더 좋아한다거나 어느 정도 음향 퀄리티를 지향하는 것을 꼭 낭비라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문제는 제 아무리 좋은 오디오가 있다 해도 사람을 완전히 만족시킬 수는 없고, 많은 음반을 소유하고 있다고 해서 음악 감상의 질적인 요소가 향상되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연말을 맞아 창고 정리를 하다보니 30여년 전 중고품점에서 구입했던 ‘마란즈’라는 앰프가 눈에 띠었다. 거의 듣지 않고 버려 둔 것이었는데 먼지를 깨끗이 털고 보니 제법 고전적인 분위기가 감도는 것이 소리도 좋을 것 같았다. 사기만했지 거의 테스트조차 해 보지 않은 음향기기였기 때문에 별로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턴테이블을 연결하고 LP 레코드를 틀었더니 제법 소리가 따뜻한 것이 맘에 들었다. 제품 번호를 확인해 봤더니 1971년도 제품으로, 당시 250달러에 판매했던 중저가 앰프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물론 당시 가격 250달러라고 하면 요즘 시세로 2천 달러와 맘먹는 것이니 그렇게 싸구려 앰프라고는 할 수 없지만 아무튼 채널당 15와트의 비교적 작은 공간이나 사무실 등에 알맞게 제작된 앰프였던 것 같았다. ‘마란즈’라고 하면 70년도의 유명 앰프 회사 중의 하나로서 특히 진공관식 고출력 앰프와 파워 리시버들이 (음악) 애호가들 사이에서 크게 사랑받았던 제품이다. 특히 CD보다는 LP음악에 최적화된 제품으로서, (집에 있는 것은 그렇게 고가 제품은 아니었지만) 턴테이블과 연결해 놓고 보니 왠지 제대로 된 짝을 찾아 결혼시켜 놓은 것 처럼 기분이 좋았다.

음악을 좋하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음향기기에 대한 로망이 있기 마련이다. 나의 최초의 스테레오는 형이 어디선가에서 주워(?) 온 중고 도시바 전축이었다. 말이 전축이었지 일종의 야외전축형의 리시버였는데 그마저도 전류소리가 찍찍나기 시작하면서 금세 고장이 나고 말았다. 당시 한국은 좋은 오디오를 가진 가정이 많지 않았는데 오디오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은 부품을 구입해서 자신이 직접 오디오를 만들거나 스피커를 제작해 음악감상을 하는 사람들도 꽤 있었다. 그만큼 좋은 오디오는 귀했고 특히 ‘마란즈’같은 제품은 구입하기조차 힘든 ‘꿈의 오디오’였던 시대였다. 미국에 온 뒤로 일제 스테레오를 구입해 음악감상을 하게 됐는데 신문사에 근무하며 고가 스테레오에 대한 취미가 있는 한 동료를 만나면서 소위 명기라고 하는 오디오 제품들의 섭렵이 시작됐다. ‘메켄토시’를 비롯하여 ‘콘라드 존슨’, ‘뱅 엔 올슨’, ‘크렐’ 등 일반인들은 잘 모르는 고가 제품들의 소리를 들으면서 한동안 스테레오에 대한 로망을 이어갔는데 결론은 제 아무리 좋은 스테레오라해도 사람의 귀를 완전히 만족시키는 오디오는 없었다는 것이다. 그나마 옛날 제품들이 어느 천재 엔지어들의 투철한 장인정신에 의해 제작되어 한동안 애호가들에게 사랑받고 또 잊혀져가곤 했을 뿐, CD 등 현대의 고도화된 테크닉 사회로 접어들면서는 그나마 장인 정신은커녕 가격이 오직 오디오의 성능을 결정하는 시대로 전락하고 말았다. LP는 좀 사정이 다르지만 작은 방에서 홀로 음악감상을 하기 위해 굳이 고출력 앰프를 따로 구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마치 FM방송을 듣기위해 수천 달러짜리의 음향기기를 살 필요가 없는 것처럼 돈을 많이 들인다고해서 꼭 만족할만한 음악감상을 할 수 있는 시대도 아니다. 더구나 요새는 CD같은 디지털보다는 LP소리가 들려주는 따뜻한 아날로그의 향수로 되돌아가는, 복고풍이 조장되고 있는 시대이기도 하다. AI(인공지능)가 제작한 능숙한 문장보다는 밤새 썼다 지웠다하며 실수 투성이의 손편지가 더 감동을 주듯 발품을 팔아가며 턴테이블을 돌리고 칙칙거리는 잡음과 함께 들려오는 LP소리는 따뜻하고 인간적이다.

한번 가 버린 시간은 영원히 되돌릴 수 없다. 그러나 음악은 신기하게도 잃어버린 시간들과 추억들을 되감는 신비한 마력이 있는 것 같다. 이미 50년이나 지난 뒤의 소리인데도 음악은 여전히 그 자리에서 같은 감동을 되돌려 준다. 스테레오는 이미 낡아 전원의 불빛조차 희미하게 되어 버렸지만 왠지 낡은 소리가 영혼을 더욱 새롭게 해 주는 것 같다. 로망 롤랑은 말하기를 음악은 나의 첫 사랑이었다고 했다. 예전에는 그렇게 꿈에 그리던 스테레오였는데 막상 눈 앞에 보며 음악을 듣고 있자니 소리에 대한 불만도 없고 디자인도 맘에 들었지만 왠지 예전의 배고팠던 시절의 간절함은 온데간데 없고 오직 쓸쓸한 첫 사랑의, 그 때 그시절의 추억만이 무럭무럭 피어오를 뿐이다. ‘Stereo’란 요즘말로 오디오기기를 말하는 것이지만 사실 1958년 부터 시작된 입체 음향 재생 기술을 말한다. 2개의 스피커를 통해 각기 다른 소리를 내지만 이 음향이 합져질 때 현장에서 들려오는 듯한 양질의 입체 음향이 우리 귀에 전달된다는 것이다. 옛 것과 새 것, 현실과 추억이 랑데뷰를 이룰 때... 당신에게 들려오는 삶의 스테레오는 어떤 것이 있나요? 마치 생생히 살아서 영혼을 후벼파듯 쩡쩡 울리는 스테레오 소리가 왠지 우리들의 추억… 그 시절의 애절했던, 희망과 포부… 몸부림을 반영하고 있는 것 같다.

<이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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