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스도 전기도 없던 옛날 고대인들에게 밤은 두려운 시간이었을 것이다. 모닥불에 의지하며 추위와 야수의 습격에 떨어야 했기 때문이다. 밤만 계속된다면 사냥을 할 수도 풀을 뜯으러 갈수도 없고 아사는 필연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고대인에게 여름이 지나고 나날이 짧아져 가는 낮의 길이는 공포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한 겨울의 어느 날을 기점으로 마법 같이 밤의 길이는 짧아지고 낮은 다시 길어지기 시작한다.
거의 모든 부족과 문명이 동지를 기념하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북유럽의 게르만족과 켈트족은 이 때 ‘율’이라는 축제를 벌였고 켈트족은 12일간 ‘율 통나무’를 태우는 관습이 있었다. 이 사이 통나무가 꺼지면 다음 해는 불운이 찾아 온다고 이들은 믿었다. 크리스마스를 ‘율타이드’라 부르거나 ‘12일간의 크리스마스’라는 노래가 있는 것은 여기서 유래한 것이다.
인도의 ‘마카라 산크란티’나 이란의 ‘얄다의 밤’ 축제도 가족들이 한데 모여 날로 강해지는 태양의 힘을 축하하고 기원하는 행사다. 한국 등 동 아시아에서는 팥죽을 쑤어먹는 풍습이 있는데 이 또한 태양의 붉은 기운과 생명을 상징한다.
동지의 중요성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건축물이 있다면 그것은 영국의 스톤헨지와 아일랜드의 뉴그레인지 일 것이다. 영국 남서부 윌셔 지역에 있는 스톤헨지는 무게가 25톤에 달하는 바위 수십개를 기원전 3,000년전 기술로 이곳에서 100마일도 넘게 떨어진 웨일스에서 끌어온 것으로 그 중심 축이 동지의 일몰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아일랜드 미드 카운티에 있는 뉴그레인지는 넓이 1에이커에 높이 12미터 규모의 거대한 봉분으로 그 중심축은 동지의 일출 방향에 맞춰져 있다.
서양의 최대 명절인 크리스마스도 동지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크리스마스는 예수의 생일로 알려져 있지만 성경 어디에도 예수의 생일에 대한 언급은 없고 많은 성서학자들은 예수 생일이 12월 25일이 아닐 것으로 믿고 있다. 그럼에도 예수 생일이 된 것은 이 날이 고대 로마 군인들 사이에 인기가 있던 미트라 신의 생일인데다 로마인들이 이날 ‘솔 인빅투스’(‘패배하지 않는 태양’이라는 뜻) 축제를 벌이고 있어 국민 통합 차원에서 명절로 정한 것이다.
기독교의 본질이 예수의 부활이고 보면 동지를 기점으로 땅 가까이 떨어졌던 태양이 다시 솟아나는 것과 상징적 연관성이 있다. 또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힌 골고다는 ‘해골의 곳’이란 뜻을 가지고 있는데 이곳이 처형장이어서 이런 이름이 붙기도 했겠지만 유대 전설에 따르면 이곳은 첫번째 인간 아담의 유골이 묻힌 곳이다. 원죄의 장본인이 묻힌 곳에서 구세주가 죽음을 맞음으로써 원죄의 사슬을 풀고 부활한다는 것은 한편의 드라마다.
아담은 원래 히브리말로 ‘흙’이라는 뜻이다. 창세기에 하나님이 흙으로 아담을 빚고 코에 생명의 입김을 불어넣었다는 이야기가 있고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라는 구절이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런 생각을 한 사람이 유대인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라틴어로 퇴비를 뜻하는 ‘humus’라는 단어가 있다. 흙에 부식된 동식물 시체가 섞인 것인데 정원수나 농작물을 가꾸는데 필수 요소다. 인간을 뜻하는 ‘human’과 겸손함을 뜻하는 ‘humility’가 모두 여기서 나왔다. 인간은 결국 한 줌 흙에 불과하며 따라서 늘 겸손해야 한다는 생각을 고대 로마인들은 갖고 있었던 것 같다.
어찌 보면 허무하기도 한 것 같지만 원래 흙이었던 인간이 세상 구경 한 번 하고 다시 흙으로 돌아가 다른 생명을 살리는 재료가 된다는 것은 그다지 나쁘지 않은 일일 수도 있다. 한 때 한국에서 유행했던 노래 가사 중 “알몸으로 태어나/ 옷 한벌은 건졌잖소”라는 구절도 있다. 우리 몸을 이루고 있는 원소는 우리가 죽은 후에도 결합 형태만 바뀔뿐 사라지지 않는다.
만화 영화 역사상 가장 많은 수입을 올린 ‘라이온 킹’에서 아버지 사자 무파사는 ‘사자는 사슴을 잡아먹지만 사자가 죽으면 풀이 되고 사슴은 그 풀을 먹는다’는 아기 심바도 알아들을 수 있는 쉬운 말로 ‘생명의 순환’(Circle of Life)을 설명한다.
해마다 겨울은 어둡지만 올 겨울을 유난히 그렇다. 2년이 넘도록 끝나지 않는 코로나 사태로 시민들이 고통받고 있고 40년래 최고인 인플레는 서민들의 생계를 위협하고 있다. 물류 대란으로 물건 구하기는 어렵고 업소는 사람을 구할 수 없다고 아우성이다. 그러나 긴 밤이 지나면 새로운 해가 뜨듯 고통의 시절도 때가 되면 반드시 지나간다. 그 때까지 꿋꿋하게 하루하루를 견디는 것이 우리가 지금 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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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