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으로 문화적 거리가 짧아진 상황 속에서 한류가 인기를 끌고 문화를 선도하는 모습은 한인으로서의 자부심과 긍지를 많이 느끼게 합니다. 한국영화인 ‘기생충’과 ‘미나리’가 세계 최고의 영화 반열에 올라선 것 뿐 아니라 넷플릭스 드라마인 ‘오징어 게임’과 ‘지옥’이 인기를 끈 것도 우리에게는 자랑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올해 가장 많은 아카데미상을 받은 영화가 있습니다. 중국계 여성 감독이 만든 ‘노매드랜드’(Nomadland) 라는 영화입니다. 노매드(Nomad)는 유랑민, 유목민을 뜻하는 독일어에서 온 말입니다. 저널리스트 제시카 브루더가 2008년 미국의 경제위기 이후 주거비를 감당하지 못해 차 한 대로 떠돌이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동행, 취재한 책이 영화화된 것입니다. 집값이 미친 듯 오르고 또 오르는 미국에서는 생존을 위해서 차를 집으로 삼고 전국을 떠도는 노매드들이 21세기 인간의 새로운 전형이 되었습니다.
영화의 주인공인 펀(Fern)도 2007년 미국의 금융위기사태로 직장을 잃게 됩니다. 설상가상으로 의지해온 남편도 암으로 잃고 대출금을 갚기 위해 집까지 팔아서 갈 곳이 없어집니다. 그래서 낡은 밴을 구하여 집으로 삼고 이리저리 떠돌면서 일거리를 찾기도 하는 등 본격적인 노매드의 삶을 시작합니다. 유랑민의 삶을 살게 되면서 그 도상에 있는 또 다른 집 없는 유랑민들을 만나게 되고, 자의적 타의적으로 노매드 인생을 선택한 그들의 낯선 형태의 삶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들에게 도움을 받고 도움을 주면서, 위안을 받고 위안을 주면서 한줄기의 삶의 희망과 행복도 갖게 됩니다. 그러면서 주인공 펀은 자신이 결코 홈리스(Homeless)가 아니라 말 그대로 단지 하우스리스(Houseless 집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강조합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우리가 가야할 길과 태도에 대하여 진지하게 성찰해보게 되었습니다. 또한 지금까지 단순히 동정심으로 바라보았던 주변의 수많은 홈리스들을 보면서 사실은 그들이 홈리스가 아니라 오히려 우리가 홈리스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노매드랜드 영화가 주는 메시지처럼 이 땅에서의 우리의 삶이 나그네, 유랑민이라고 한다면 우리들의 진정한 홈은 천국이기 때문입니다.
구약성경에 보면 야곱과 그의 가족들이 요셉의 주선으로 애굽으로 이민을 오게 되었는데 이때 요셉은 가족들에게 바로 왕 앞에 서게 되면 ‘우리가 조상대대로 유목민들’이라고 말하라고 조언합니다. 다윗도 훗날에 ‘우리 조상들은 떠돌이’였다고 고백합니다. 성경은 이 땅에서의 우리들의 정체성은 유랑민, 나그네, 순례자들이고 진정한 홈은 천국이라고 말씀합니다.
전례 없는 코로나와 델타 바이러스, 최근의 오미크론의 확산으로 생명을 비롯한 많은 것들을 잃고 있는 상실의 현장에서, 우리가 사는 미국에 점점 늘어가는 홈리스들을 안타깝게 바라보는 우리들의 현실에서, 홈리스는 홈리스가 아닌 하우스리스일 뿐이고, 우리 역시 이 땅에서 기쁨과 감사로 ‘홈 스위트홈’을 살아야 하는 것이 마땅한 자세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도 노매드(유랑민, 나그네, 순례자)의 길을 이왕이면 기쁨 넘치는 마음으로 힘차게 걸어 나아가기를 소망해 봅니다.
12월입니다. 평화, 기쁨, 희망, 사랑으로 오신 예수님을 기억하고 성탄을 기다리는 대강절의 시간입니다. 어느 때 보다도 마음의 옷깃을 새롭게 여미고 내 안에 주님을 모실 홈(구유)을 복원해야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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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호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