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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프가 만난사람 9

2021-12-05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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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나 한순간 무너질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 알지 않는가?

▶ 길을 잃은 사람들, 노숙자 앤디 테일러

제프가 만난사람 9

노숙자 앤디 테일러

# 사장에서 걸인으로의 추락
연말 추위에 거리에서 구걸하는 홈리스들을 보면 측은함이 몰려온다. 나는 ‘홈리스(homeless)’ 라 부르기 보다 ‘하우스리스(houseless)’라는 표현이 타당하다 생각한다.  
‘home’이란 가족을 의미하는 뉘앙스가 강한데 가족이 없는 사람이라도 거주할 장소가 있다면 노숙자는 아니다. 미국 말에 ‘home이란 받아주는 곳”이란 말도 있다. 따라서 ‘homeless’는 집도 없고 받아주는 이 없는 신세로 전락해버린 상태다. 

근래 자신의 갈 길을 잃고 거리에서 구걸하는 군상들이 부쩍 늘어났다. 앤디 테일러(Andy Taylor) 씨는 구부러진 등판을 지탱하며 중앙 분단선 위에 서 있었다. 물 한 병을 건네니 급히 들이켰다. 고맙다는 답변 대신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본다.‘아뿔싸’  
지폐를 건네니 고맙다는 인사 대신 물만 들이킨다. “What’s your name?” “Andy Taylor”  “어찌된 일이니?” “페인팅 회사 사장이었지만 다 날렸고 아내도 날 버렸어. 캘리포니아로 갔지….” 

나는 궁금한 점을 물어 보았다. “하루 얼마나 버니?” 괴롭다는 표정으로 “$20 to $30” 하며 말하는데 침이 튀어 불편했다. 그는 더 얻을 것이 없어 보였는지 뒤편 차로 발길을 옮기는데 그 한 박자 늦은 듯한 모습이 파리에서 보았던 로댕의 ‘칼레의 시민’을 닮았다. 허망한 생각도 잠시, 뒤차가 빵빵거리며 재촉한다. 
앤디의 구걸 사인은 ‘Homeless Heading to Golden Gate’라 적혀 있는데 폰트(font)도 선명했다. 사인 하나가 참으로 인생 여정에서의 수많은 모순(Oxymoron)을 보여 주는 듯했다. 노숙자 임을 선언하면서도 수식어와 도움을 요청 하지도 않는다. 더욱이 떠나간 아내가 있는 금문교로 간단다. 금문교는 금의환향을 뜻하는 캘리포니아 상징물 아닌가?  


그는 왜 ‘Thank you’ 한 마디 하기가 어려웠을까? 주고 싶으면 주고, 아니면 꺼져 버려라 하는 듯한 그의 태도에서 무너진 자들의 반감을 잃을 수 있었다. 나에게 고작 몇 푼 건네는 너도 별거 아니라는 반감과 너의 자리에도 있어 보았다는 반감. 덥수룩한 흰 수염과 수많은 주름살이 지난 세월의 고난을 대변해주어서였는지 무례한 태도에도 기분이 상하지 않았다. 누구나 한순간 무너질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 알지 않는가.

# 명품 패션 센터 앞의 노숙자들
어느덧 쇼핑시즌, 펜타곤 쇼핑센터 입구에 자리를 잡고 앉아있는 론(Ron_을 만났다. 젊은 그의 종이 사인은 간략했다. “Thanks a lot.” 자본과 투자 없이 벌어들이는 수입은 현찰에 세금도 없으니 이런 장사 세상에 없다.  
차들이 정차 되어 있으면 의자에서 일어나 걷다가 신호등이 바뀌면 의자로 돌아와 전화기를 보는 여유로운 행동은 전혀 허기진 자의 태도가 아니다. 또 다른 로댕의 명작 ‘생각하는 사람’이 떠올랐다. 

과연 론은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아갈까? 몸이 성한 사람이면 일하며 살아야 한다고 배웠고 우리 모두 그렇게 살아왔다. 어린 시절 추운 겨울 육교에서 보았던 걸인들은 모두 불구자들이었다. 
오스카 상을 수상한 Slumdog Millionaire 영화에서는 어린 아이들을 납치한 조직 폭력배들이아이들을 장님으로 만드는 장면이 있다. 구걸 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기에 정상인들은 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근래 만난 노숙자 중 유일한 불구자는 “one eye John”이다. 

오전 임에도 심한 술 냄새가 났고 알콜 중독임을 스스로 인정했다. 새크라멘토(Sacramento)가 고향이며 돌아갈 차비를 구한단다. 눈에 대해 물어보니 술에 취해 싸우다가 총탄에 실명했다고 담담히 대답했다. 술, 도박, 마약 그리고 총기는 미국을 병들게 하는 주범들이다. 얼마 전 파리에서 목격한 노숙자 걸인은 거리에 아예 와인 병과 와인 잔까지 벌여 놓았었다. 내가  생각하는 걸인과는 거리감이 있었다.  

# 정부는 시민을 가둘 권리가 없다
노숙자들 중에는 정신병자들도 있는데 그들이 길거리로 내몰린 연유는 연방 대법원이 1975년 판결(O’Conner v. Donaldson)에서 주 정부는 위협적이지 않은 시민을 가둘 권리가 없다고 판결하였고 그 결과 각 지역 정부는 정신병원들을 폐쇄시켰다. 
정부와 식구들이 거두지 않는 그들은 길가로 내몰렸다. 노숙자가 기하급수로 늘어난 또 다른 이유는 독버섯처럼 일어나는 마약중독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  

백인 중년 여성 린다는 한인 타운의 심장부에서 구걸행위를 하고 있었다. 구걸 행위도 밥벌이행위라면 장소 선택도 신중해야 한다. 우범지대에는 걸인이 적은 반면 로비스트가 즐비한 K St.에는 노숙자들이 진을 치고 있다. 그녀는 캠프 그라운드에서 잔다고 답하며 고개를 돌렸다. 양 볼이 핼쑥하게 파여서 마약 하나? 하는 선입견이 몰려 왔다. 

그녀와 달리 배가 유난히 나온 애드윈은 코비로 직장을 잃었고 5달러를 건네자 “Thank you! I like Korean food” 하며 웃는다. 순간 가슴이 내려 앉는다. 5달러는 한 끼 식대도 안 되는 금액이다. 그러나 또다시 주머니로 손이 들어가지 않았고 야속한 내 인심은 자신에게는 무척 관대하지만 남에게 인색한 지 오래며 그 모습을 정당화시키며 살아왔다. 

중앙 분리선 잔디 위에 그가 걸어 새겨진 외길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어떤 길을 걷고 있는 것일까? 싸늘한 날씨, 이번 성탄 시즌 모든 분들 가정에 따뜻한 온정이 깃들길 기원한다.
문의 Jahn20@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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