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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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 사진들이 주는 교훈

2021-12-04 (토) 김정원 / 구세군 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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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 고층 빌딩들 사이로 구세군 마크가 작게 새겨진 한 빌딩 안으로 들어가면 베이지역을 맡고 있는 구세군 지방 담당자들이 일하는 사무실이 나옵니다. 사무실 복도 곳곳에 걸려 있는 흑백사진들이 언제나 그렇듯 출근하는 사람들을 반겨줍니다. 그렇게 저는 백년 전 오십년 전 그때, 그때의 기록이 담긴 사진들이 둘러싸인 공간에서 회의도 하고, 사람들과 웃으며 커피도 마십니다.

그 흑백사진 속에는 한때 구세군 사관들을 배출했던 사관학교를 배경으로 유니폼을 입은 젊은 여성들이 걸어오는 장면, 초기 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 거리에서 중국 고유의 옷을 입고 가도 전도 행진을 하는 장면, 누군가의 집 앞에서 빵과 음식들이 들은 바구니를 전달하는 장면, 그리고 한때 큰 지진으로 황폐해져 버린 샌프란시스코의 거리 등등 기록적인 사진들이 대부분입니다.

저는 원래 다큐멘터리와 같은 기록물적인 영상을 좋아했던 터라 흥미롭게 그 사진들을 처음에는 바라봤지만 한편으로는 세련된 디자인의 사무실 구조와 페인트 색과는 이런 류의 사진들이 별로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해왔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한 동료 사관님께서 직원회의 때 나눈 짧은 메시지로 인해 잠시나마 그 사진을 촌스럽게 보았던 제 자신이 부끄러워진 때가 있었습니다.


그 동료 사관님은 양부모의 알콜 중독으로 심하게 깨진 가정 속에 결핍으로 신음하고 있던 어린 시절의 아버지. 그리고 그런 자신의 아버지에게 다가와 도움을 주며 결핍을 보듬어주었던 것이 구세군이었노라며 벽에 걸려 있는 흑백의 사진들을 가리켰습니다. 지금은 이미 이 세상에 없고 이름도 남겨있지 않지만 그 사진들 속의 누군가의 섬김과 헌신으로 자신의 아버지는 부모와는 다른 인생을 살 수 있었던 것이었다며 지금 우리가 하는 일들이 비록 작은 일이라 할지라도 누군가의 삶을 살리고 변화시킬 수 있는 메시지가 될 수 있다고 말해주었습니다. 구세군의 사역을 알기에 참으로 짧지만 제게는 울림이 있는 메시지였습니다.

추워지는 이때가 구세군 사역에서 가장 바쁜 시기입니다. 자선냄비, 온 가족이 먹고 남을 푸드박스 마련하기, 따뜻한 음식 나누기, 그리고 저소득층 어린아이들을 위한 장난감 모금 등등 곳곳에서 이미 자원봉사자들과 구세군 사관님들의 섬김이 시작되었습니다. 저도 그 동료 사관님의 메시지를 다시 한번 되새기며 또 오늘 하루를 시작해 봅니다.

<김정원 / 구세군 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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