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 907년에서 979년의 시기, 그러니까 당(唐)이 망하고 송(宋)이 들어서기까지의 이 기간은 중국 역사에서 5대10국 시대로 불린다.
황하유역을 중심으로 화북을 통치한 후량(後粱), 후당(後唐), 후진(後晋), 후한後漢), 후주(後周)의 다섯 개 단명왕조와 화남 등지의 10개 지방정권이 흥망을 거듭한 정치적 격변기다.
한 마디로 난세 중의 난세였다. 아마도 그 시대의 표어를 정리한다면 이랬을 것이다. ‘정권유지를, 더 나가 정권탈취를 위해서는 무슨 짓이라도 가능하다’-.
정권욕에 눈이 먼 폭군, 간신들이 날뛰던 5대10국 시대는 5,000년 중국역사에서 ‘가장 몰염치한 시대’로도 꼽힌다.
이 ‘몰염치한 시대’를 대표하는 인물 중 하나가 후진의 고조 석경당이다. 그는 본래 후당의 절도사였다. 그는 군주로 모시던 후당의 말제와 불화 끝에 찬탈을 꾀한다. 그러나 실력이 달린다. 그래서 한 가지 꾀를 냈다.
장성 이남을 호시탐탐 노리던, 그러니까 당시 후당의 주적 격인 거란의 태종 야율광덕에게 원군을 청한 것이다. 스스로를 아들로 낮추면서 매년 막대한 세폐를 바칠 것을 약속한다. 거기다가 ‘연운(燕雲)16주’로 불리는 안문관 이북의 땅을 바치겠다고 제의했다.
그 대가로 얻은 것은 무엇일까. 거란군의 출병으로 후당은 멸망하고 석경당은 찬탈에 성공한다. 그래서 열린 왕조가 후진이다. 그 후진은 그러나 2대 11년 만에 망한다. 그것도 거란에 의해.
이에 더해 석경당은 또 다른 아주 거창한 역사적(?) 타이틀을 얻는다. ‘아들 황제’라는 만세의 조롱에, 천년 세월이 지나도 지워지지 않는 ‘매국노’란 악명이다.
연운16주는 오늘날 베이징 인근일대로 북방민족의 전통적인 남진 루트인 요서회랑의 코밑에 해당된다. 이 전략요충지를 내줌으로써 한(漢)중국인들은 이후 400여 년 동안 거란에 이어, 여진, 몽고족 등 북방민족 침략에 민중은 어육(魚肉)이 되고 마는 참화에 시달리게 된다.
‘정권유지를 위해서는 무슨 짓도 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석경당이 나름 구사한 ‘신의 한수’는 한(漢)중국인들에게는 천추의 한을 남겼다고 할까.
아주 집요하다. 아니, 뭔가에 씌운 것 같은 느낌마저 준다.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라고 했나. 북한, 김정은을 향한 문재인 대통령의 지극정성 말이다. 김정은 대변인으로 불린지 이미 오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걸음마다 외치느니 김정은과의 대화이고 무조건적인 평화, 또 평화다.
8.15 경축사주제도 한반도평화프로세스였다.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는 종전선언을 촉구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을 만나서도 평화구상을 밝히면서 교황의 방북을 종용했다. 유럽 3개국 순방외교에서도,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에서도 문 대통령이 꺼내 든 화두는 북한이었다.
이와 동시에 문 정권이 비밀프로젝트로 추진해온 것은 남북정상회담이다. 그 첫 시도는 올해 남북 유엔동시가입 30주년을 맞아 남북정상이 유엔총회에 동시에 입장하는 것이었다. 잘하면 세계적 볼거리가 될 뻔했던 그 물밑 작업은 김정은의 불참으로 그만 무산됐다.
여전히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는 것이 ‘어게인 2018 평창 이벤트’인 모양이다. 2022년 2월에 열리는 베이징 동계올림픽 세리모니에 남북정상이 모두 참석하는 거다. 그리고 올림픽을 배경으로 시진핑 블레싱하에 문재인과 김정은이 만난다. 거기에다 하나 더. 바이든이 올 경우 4개국 정상회담을 배경으로 화려한 종전선언 평화 쇼를 펼치는 거다.
바로 이를 위해서인가. 미국 등을 상대로 문 정권은 나름 전 외교력을 동원해 한반도 종전선언을 종용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왜 이토록 ‘묻지 마’식으로 종전선언에만 매달리고 있을까. 평화에의, 남북화해에의 간절한 염원에서인가.
‘쓸모 있는 바보들(Useful Idiots- 공산주의를 껍데기만 알면서 호의적으로 보는 서방 세계 지식인들을 공산 세계 국가에서 조롱하는 표현)의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나름 어느 정도 진정성도 있다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이게 종전의 워싱턴의 시각으로 보인다. 그 시각에 변화가 생겼다.
우선 ‘어게인 2018 평창 이벤트’모색의 타이밍이 그렇다. 3월9일 대선을 한 달 앞둔 시점에서 펼쳐지는 평화 쇼, 이를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은 다름 아닌 문재인 2기, 정권 재창출이다.
거기다가 문재인 표 종전선언은 북한, 더나가 중국의 정치공세의 빌미가 된다는 건 불 보듯 빤한 사실이다. 종전선언이 이루어지면 그 다음에 나오는 것은 주한미군철수 요구다. 그 다음 수순은 한미동맹 와해다. 이른바 김일성 시대부터 추구해온 ‘붉은 깃발아래 통일’이라는 ‘최후 승리’의 수순을 밟아가는 거다.
이걸 문재인 정권 사람들이 모르고 있을까. 아니다. 때문에 마침 휴전선 이북과 이남에서(좌파 종북세력)에서 최근 들어 부쩍 높아진 미군철수의 목소리, 이 상황과 연계해 바이든 행정부는 문재인의 종전선언 주창에 극도로 조심해야 한다는 경고의 소리가 워싱턴에서 높아가고 있다.
그런데도 한사코 문 정권은 종전선언을 통한 남북평화 쇼에 올인하고 있다. 바이든의 베이징 올림픽 외교 보이콧 가능성 발언으로 불어 닥친 국제 사회의 역풍에도 불구하고.
그 대가로 얻는 것은 무엇일까. 대한민국의 안보도, 동맹도, 경제도 결딴나는 그런 상황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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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세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