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빛의 풍요로움도 사라졌다. 너른 호수를 둘러싼 사시나무들. 이제는 나목이 되어 앙상한 가지만 드러내고 있다. 물과 산이 온통 잿빛이다.
아직도 여름의 합창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 그런데 가을도 깊어 벌써 입동도 지났다.
‘Thanksgiving Day’- 캘린더의 빨간 글씨가 눈에 들어온다. 또 다시 감사절인가. 매년 맞는 감사절이다. 올해의 경우 그 감회가 새롭다.
코비드 팬데믹에 박제화 됐던 일상들. 그 지난날들이 유독 길고 상실감으로 느껴져서일까. 아니, 그보다도 아주 당연시 되어오던 것들, 그리운 사람들과 함께 식탁에 둘러앉아 웃음꽃을 피우는 평범한 일상의 그 소중함을 새삼 되돌아보게 되어서인지 모른다.
추수감사절에서 크리스마스, 연말로 이어지는 이 시즌이면 해마다 들려오던 소리가 있었다. 문화전쟁(culture war)의 포성이다. 크리스마스 트리 같은 특정종교를 상징하는 장식물을 공공장소에 세워서는 안 된다 등의 시비와 함께. 코비드 팬데믹 탓인지 그 소리도 뜸해 졌다.
지구촌 반대로 눈을 돌리면 상황은 여전히 살벌하다. 깊은 신음에, 고통의 절규에, 피에 젖은 비명이 어지러이 들려온다. 공적 공간은 말할 것도 없다. 밀실에서도 신앙의 자유는 허락되지 않는다. 국가권력이 한 개인의 영혼까지 관리하려 든다.
그 과정에서 온갖 반인륜 범죄가 저질러진다. 구금에, 고문에, 강간에, 목이 잘리는 처형에 이르기까지.
“이는 전 세계 기독교인 중 8명의 1명꼴로, 그러니까 3억4,000여만의 기독교인들이 매일같이 당하고 있는 참상이다.” 오픈도어선교회가 세계 기독교 박해 순위인 월드워치리스트(World Watch List) 2021년 보고서를 통해 발표한 내용이다.
특히 혹독한 기독교 탄압이 이루어지고 있는 지역은 과격 이슬라미스트 지배세계와 공산권이다. 아프가니스탄, 소말리아, 리비아, 파키스탄, 예멘. 그리고 북한, 중국 등이 그 나라들이다. 아프가니스탄의 경우 미군철수와 함께 기독교인을 타깃으로 한 피의 처형은 이제 막 시작됐다는 처참한 보도가 잇달고 있다.
기독교가 그 뿌리인 자유민주주의 가치관을 부족주의 이슬라미스트 세력과 공산 전체주의세력이 완강히 부정하는 양상으로 전 지구적인 문화전쟁이 전개되고 있다고 할까.
올해에도 최악의 기독교탄압 국가로 뽑힌 나라는 북한이다. “북한체제의 목적은 북한 내 기독교인 멸절로 그 김정은 체제는 국가안보에 위협이 될 뿐 아니라 세계 최악의 인권유린 세력이다.” 내셔널 인터레스트지의 지적이다.
단지 성경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체포된다. 그리고 본인은 물론 2살짜리 아기에서 노부모에 이르기까지 3대가 정치수용소로 보내진다.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은 가혹한 체벌에, 굶주림에 고문이다. 그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인체실험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공개 십자가 처형을 당하기도 한다.
40만으로 추정되는 북한의 기독교인들은 수령유일주의 신정체제 도전세력으로 간주돼 특히 가혹한 박해를 받고 있는 것으로 오픈도어선교회는 밝히고 있다.
북한의 기독교인 탄압은 최근 들어 더 치밀하고 포악해 지고 있다. 중국이 도움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내셔널 인터레스트에 따르면 베이징당국은 중국내 탈북자 색출작업에 박차를 가하면서 선교사와 접촉한 탈북자들을 따로 구별, 기독교인으로 분류해 강제 신병송환과 함께 그 보고서를 북한 측에 통보해주고 있다. 과거 나치가 ‘다윗의 노란별’을 유대인에게 부착시켜 조직적 박해와 학살을 한 그 수법과 흡사하다는 것이다.
고문과, 사형이 기다리고 있는 북한으로 탈북자들을 강제 송환하고 있는 중국, 그 중국 땅에서도 기독교인 박해는 날로 심화되고 있다.
십자가가 강제 철거된 교회가 900개가 넘는다. 성경압수가 전국적으로 벌어지고 있고 불도저를 동원해 아예 교회건물 자체를 깔아뭉개는 일도 다반사다. 가정교회는 물론이고 국가운영의 교회를 공안이 습격하는 상황도 자주 목격된다. 이른바 시진핑의 ‘기독교의 중국화’정책에 따라 성경이 중국공산당 버전으로 개조된다.
거기에다가 안면인식 소프트에어에서 DNA 확인, 전화추적, 소셜 크레딧 카드시스템 원용 등 신장성의 위구르인 탄압에 사용했던 AI기술을 기독교인 탄압에도 도입, 촘촘히 색출 망을 조여 오고 있다는 것이 어메리칸 컨서버티브지 보도다.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보이콧 할 수 있다’- 워싱턴에서 들려오는 소리다. 위구르인에 대한 인권탄압에 대한 강력한 경고음이다. 그 가운데 희미한 외침이 들리는 것 같다.
‘위구르 사태도 사태지만 고문당하고, 맞아죽고, 심지어 목이 잘려나가는 우리에게도 관심을 가져달라’- 북한, 중국, 아프가니스탄 등 세계 곳곳에서 탄압받고 있는 기독교인들의 소리 없는 절규 말이다. ‘제발이지 같은 기독교 교회, 교인들이라도.’
터키가 다 구워졌다. 윤이 나는 아늑한 갈색의 터키를 중심으로 빨강, 초록 등 색깔이 겹쳐진 성대한 식탁이 차려졌다. 온 가족이 함께 모인 추수감사절 디너. 얼마나 고대해왔던가. 순간 웃고 떠들던 아이들도 조용해졌다. 감사의 기도시간이기 때문이다.
무엇을 먼저 감사해야 할까. 무엇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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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세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