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늘 하루 이 창 열지 않음닫기

요즈음 내가 꾸는 꿈

2021-11-16 (화) 문일룡 변호사
크게 작게
요즈음 내가 꾸는 꿈이 있다. 제법 오래 전부터 꾸어오던 꿈이다. 들으면 정말 ‘꿈’ 같은 얘기라고 할지 모르지만 현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내용은 이러하다.

미국 고등학교 수업이다. 학생들이 모두 자리에 앉자 한국의 ‘십센치’라는 밴드가 부르는 노래 ‘10월의 날씨’ 뮤직비디오가 눈앞에 크게 다가온다. ‘오늘의 날씨는 그리 맑지 않지만, 선선한 바람이 불어 포근합니다…. 용기를 내 거리를 나와보니, 괜히 나만 우울했나봐. 젖은 우산 같던 마음도 마를 것 같아.’ 약간 가라앉은 느낌을 주지만 가사, 음악 모두 내 가슴에 잘 안착된다. 나 아무래도 가을을 타나보다.

그 다음에 또 다른 비디오 클립이 소개된다. 모래시계의 명장면 중 하나. 태수 역을 맡은 최민수가 사형장으로 나가기 전에 검사인 친구 우석 역의 박상원과 대화를 갖는다. “나, 떨고 있냐…?” “너, 괜찮아.” 임권택 감독의 영화 ‘서편제’의 한 장면도 나온다. 아버지가 이제 앞을 잘 못 보게 된 딸 송이를 줄로 붙잡아 이끌고 걸으면서 ‘사철가’를 부른다. ‘이 산 저 산, 꽃이 피니 분명코 봄이로구나. 봄은 찾아왔건 만은, 세상사 쓸쓸허드라.’


두 학기, 네 쿼터로 나누어져있는 이 수업의 첫 쿼터에서는 한국의 대중문화가 소개된다. 학생들은 K-영화, K-드라마, K-팝을 위시해 한국의 가곡, 동요, 창, 판소리와 코미디도 접해본다. 둘째 쿼터에서는 말하기와 듣기에 초점을 맞춘다. 간단한 주제를 놓고 대화를 나누는 것으로부터 시작해 이슈 토론, 정책 보고, 마케팅, 뉴스 발표 등을 해본다. 그 다음 쿼터에서는 읽기에 집중한다. 박경리의 ‘토지’와 윤동주의 ‘서시’ 등 한국문학이 소개된다. 그리고 마지막 쿼터는 쓰기 위주 수업이다. 보고서, 편지, 일기, 논술, 수필, 시, 소설 등을 시도해본다.

이 수업은 헤리티지 스피커, 즉 한국어가 모국어이든지 한국계 학생으로 태어나 어렸을 때 한국어를 부모로부터 배운 적이 있는 학생들을 위한 수업이다. 아직까지 미국에서 가장 큰 학군들 중에 하나인 페어팩스 카운티 공립학교를 비롯해 미국 어느 곳에서도 시도해본 적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나는 이러한 프로그램이 도입되었으면 좋겠다는 꿈을 꾸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이에 대해 지난 몇 달 동안 페어팩스 카운티 교육청의 외국어교육 담당자와 논의해왔다. 주미한국대사관의 관계자들도 환영하고 후원하겠다고 했다. 다행히도 교육청 담당자의 긍정적 반응이 이제 중요한 단계에 이르렀다.

교육청 검토위원회가 내년부터 페어팩스 카운티 고등학교에서 현재 Level 1~4의 네 단계로 제공되는 한국어수업에 Level 5를 추가하고, 헤리티지 스피커들을 위한 Level 1 수업도 제공하는 건의가 어제 열린 교육위원회 회의에서 정식으로 받아들여졌다.

이는 정말 기뻐해야할 일이다. 지금까지 중국어, 일본어, 스페인어 등의 다른 외국어들에 비해 수준별로 제공되는 수업이 한 단계 부족했던 한국어수업이 이제 Level 5 추가로 제대로 자리를 잡아가게 되는 것이다. 스페인어에 국한되었던 헤리티지 스피커들을 위한 프로그램에 한국어가 추가된다는 것은 그만큼 한국어 교육의 중요성을 인정받았다는 의미이다.

물론 앞으로도 할 일은 많다. 우선 커리큘럼을 개발해야한다. 교사도 확보해야한다. 또한 수강학생이 없으면 수업을 실시하지 못하므로 이 프로그램에 대한 적극적인 홍보도 필요하다. 이제 Level 1수업을 제공하는 단계이기에 아직은 내가 꾸던 꿈과 같은 내용의 수업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누가 뭐래도 나는 요즈음 많이 들떠있는 것은 사실이다. 기분 좋다!

<문일룡 변호사>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