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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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집 앞, 작은 도서관

2021-11-15 (월) 노 려 전 웨체스터 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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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로 만든 새 집 같은 것이 동네 길 녹지대에 세워져 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 매일 몇 차례씩이나 오고 가는 길에 조금만 뭐가 바뀌어도 금방 눈에 띄는데, 빨간색 페인트가 칠해져 있는 가로세로 두 뼘 정도의 나무 상자가 한 보름간 타주를 여행하고 온 사이에 우후죽순같이 나타난 것이다. 하지만 이것을 보는 순간 금방 ‘리틀 프리 라이브러리’라는 걸 알았다.

몇 년 전 책을 그 안에 넣어두면 이웃들이 가져가고 갖다놓기도 하는 작은 도서관 (www.littlefreelibrary.org)에 대해서 기사화 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리틀 프리 라이브러리’를 바로 우리 집 앞에서 보니까 신기하고 반가웠다. 3년 전 그 당시에 미국 50주에 거의 9만 개의 리틀 라이브러리가 있다고 했었는데, 다시 구글을 해보니 미국 뿐 아니라 유럽과 아시아까지 10만 개가 넘는다고 한다.

당장 ‘리틀 프리 라이브’로 달려갔다. 혹시 Dr. Suess 시리즈가 있나 보러 간 것이다. 얼마 전 부터 희귀책이 된 어린이 책이다. 워낙 유명한 동화 작가인 닥터 수스(실제 발음은 ‘소이스’)의 책이 지난 봄 인종차별적인 내용이 있어 출판을 금지한다는 뉴스를 읽고 나서 철저한 인종차별 반대 입장임에도 불구하고 왠지 닥터 소이스가 그림도 그린 귀여운 동화책이 금지된다는 것에 좀 안타까웠었다. 젊은 뉴요커들은 벌써 이 책이 눈에 띄면 사둔다는 소리를 들었다. 우리 아이들 어릴 때, 영어 잘 못하는 부모 대신 동화집을 많이 사줬을 때, 닥터 소이스 책도 몇권 섞였을 텐데 남아있질 않다.


얼마 전 아스펜 여행 중에 들렸던 알뜰가게(Thrift Shop)에서 뒤적여본 어린이 책 중에 닥터 소이스의 동화책이 있어서 얼른 샀다. 단돈 10센트로. 이 곳에선 닥터 소이스의 책이 귀해질 것이라는 걸 아직 모르나보다. 어쨌든 우리 동네 ‘리틀 라이브러리’에 닥터 소이스 책은 없었고 과학, 요리, 소설 등 다양한 종목의 책들이 가지런히 꽂혀있었다. 버려야한다고 하면서 잘 버리지를 못하여 책상 위와 벽의 선반을 넘쳐나 지하실 이케아 책장 4개에 꽉 꽂혀있는 책 중에서 몇 권 골라 여기다 갖다놓을 생각을 해본다.

글쎄 요새 누가 책을 읽나. 책 겉표지가 닳도록 북 마크를 끼우며 책 한 권을 읽던 시대는 지나가는 것 같았다. 유튜브에서 책을 읽어주는 여자, 책 읽어주는 남자가 길고 긴 스토리를 책이 쓰인 시대적 배경이나 작가의 의도, 또는 유명 평론가들의 평가를 곁들여서 몇 십분 만에 똑 부러지게 정리를 해준다. ‘책’ 자체가 희귀 물건이 될 날도 멀지 않다는 생각이었다.

이제 가끔씩 산책 삼아 안 읽는 책을 들고 ‘리틀 프리 라이브러리’로 걸어가서 흥미로운 책이 보이면 들고 와야겠다. 닥터 소이스의 동화집이 있나도 계속 살펴보면서.

<노 려 전 웨체스터 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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