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정말 제2의 스푸트니크 순간(Sputnik moment)을 목격하고 있는가? 파이낸셜 타임스는 중국이 지난 8월, 극초음속 미사일 실험을 했다고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물론 중국 정부는 이를 부인했다. 이와 관련해 마크 A. 밀리 미합참의장은 “지금이 스푸트니크 순간인지 잘 모르겠지만, 그것에 매우 가깝다고 생각한다”며 중국의 미사일 실험을 냉전시대의 중대사건이었던 소련의 사상 첫 인공위성 발사에 비유했다.
아무래도 밀리는 뽀얗게 먼지 쌓인 자신의 역사책을 다시 들춰보아야할 것 같다. 중국의 미사일 실험은 스푸트니크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을뿐더러, 그같은 억지 주장을 펼치는 것은 요즘 한창 몸집을 불려가는 워싱턴 정가의 위험천만한 피해망상증에 먹이를 주는 것과 마찬가지다.
소련은 1957년 10월4일, 인류최초의 인공위성인 스푸트니크를 지구 궤도로 쏘아 올렸다. 미국과 소련은 어느 쪽이 먼저 인공위성을 우주로 발사하느냐를 놓고 수년 동안 치열한 경쟁을 벌여온 터라 스푸트니크호의 성공은 미국인들을 충격의 도가니로 몰아넣기에 충분했다. 수차례에 걸친 소련의 강력한 핵실험 여파 속에 나온 스푸트니크의 성공적 발사는 양국이 새로이 전선을 구축한 우주에서 소련이 앞서가고 있다는 신호로 해석됐다.
스푸트니크는 우주경쟁의 혁명적 사건이었다. 반면 극초음속 미사일은 해묵은 뉴스다. 극초음속 미사일은 마하 5이상의 속도로 비행한다. 하지만 미국과 소련은 1959년을 기점으로 소리의 속도보다 20배나 빠른 대륙간탄도탄을 실전배치했다. 2차 세계대전 막바지에 독일이 파리를 겨냥해 처음 발사한 V-2 로켓도 초음속에 가까운 속도로 비행했다.
스탠포드 대학의 과학자이자 이 방면의 전문가인 카메론 트레이시는 극초음속 무기는 대륙간탄도탄(ICBM)에 비해 비행속도와 전자탐지망을 피하는 은폐기능 면에서 나을 바가 없다고 지적한다. 한마디 덧붙이자면 중국의 미사일은 타격 목표물에서 24마일이나 빗나갔다.
작가 겸 언론인으로 활동하는 프레드 카플란은 중국의 미사일 테스트가 미국의 방대한 미사일 방어시스템을 무력화시키기 위한 시도일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수천 억 달러를 퍼부은 미국의 미사일방어체계는 지난 여섯 차례의 시험에서 세 번이나 실패한 값비싼 애물단지다. 국방부가 2019년 3월 이후 테스트를 중단한 것은 아마도 이런 연유에서일 것이다. 설사 미사일방어시스템이 적대국이 발사한 미사일을 완벽히 조준한다 해도 상대방이 한꺼번에 두 발의 미사일을 발사하는 비대칭적 조치를 취할 경우 속수무책이 되고 만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런 논의에서 과학과 팩트가 힘을 쓰리라는 기대는 하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위험천만한 신냉전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는 양당의 공감대가 워싱턴 정가에 폭넓게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펜타곤으로선 그것이 사실이건 허구이건 첨단기술로 무장한 거대한 적에 대한 공포심을 한껏 부추겨 그들의 움직임에 일일이 맞대응하는데 필요한 막대한 추가예산을 따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신냉전이라는 피해망상증은 이미 워싱턴 밖으로 퍼진지 오래다. 최근 국제관계 평론지인 포린어페어스는 지난 40년간 줄기차게 중국을 다독여온 미국의 정책입안자들에게 쓴소리를 날린 저명한 현실주의 학자 존 미어셰이머의 에세이를 게재했다. 미어셰이머는 대등한 반열에 들어선 경쟁국을 적극적으로 격려하는 것은 핵대결을 포함한 열전으로 이어질 수 있는 신냉전을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현실주의 논리는 그게 끝이다. 현실주의 제사장인 케네스 왈츠는 일단 냉전이 끝나면 일본은 국가안보를 더 이상 미국에 의존하지 않고 자체적으로 핵무장을 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미어셰이머는 또 냉전이 종식되면 나토가 붕괴할 것이고, 유럽은 지역 국가들이 아귀다툼을 벌이는 각축장이 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는 유럽국가들, 특히 독일이 핵무장을 할 것으로 내다보았다. 그러나 이런 예언은 모조리 빗나갔다. 사실 유럽연합(EU)은 냉전이후 수십 년 동안 회원국 사이의 결속력을 높이며 더욱 강성해졌다. 게다가 일본 역시 비핵화를 고수했다.
필자가 이 같은 사실을 거론하는 이유는 미어셰이머가 ‘힘의 정치’(power politics)를 국제무대에서 국가를 움직이는 유일한 동력으로 꼽았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긴밀한 경제적 상회의존처럼 힘의 정치와는 완전히 결이 다른 국제관계의 주요 동력이 적지 않다. 중국을 포함한 오늘날의 세계는 복잡한 글로벌 경제시스템의 촘촘한 그물 안에서 긴밀히 연결되어있다. 이 같은 시스템 안에서 전쟁을 일으키는 국가는 피해국과 거의 동일한 정도의 타격을 입게 된다. (2014년 러시아의 크리미아 합병을 제외하면) 1945년 이후 타국의 영토를 무력으로 강점한 사례는 전무하다. 이는 전례없는 국경존중에 해당한다. 뿐만 아니라 강화된 핵억지력은 각국의 무력도발 의지를 꺾어놓았다.
미국 외교정책의 과제는 전통적인 ‘힘의 외교’가 중국의 팽창주의를 억제하는데 유용하다는 사실과 함께 글로벌 경제체제 안에서의 국가간 상호의존성 역시 무모한 도발을 효과적으로 억제한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이다.
미국은 이들 두가지 도구를 동시에 사용해야한다. 이같은 접근법은 겁주기와 무력시위보다 실행하기가 훨씬 까다로운게 사실이지만 세계의 평화와 번영을 지켜주는 한층 정교한 방식이다.
예일대를 나와 하버드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은 파리드 자카리아 박사는 국제정치외교 전문가로 워싱턴포스트의 유명 칼럼니스트이자 CNN의 정치외교 분석 진행자다. 국제정세와 외교 부문에서 가장 주목받는 분석가이자 석학으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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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드 자카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