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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일 외교 3국지, 그 현주소는…

2021-11-01 (월)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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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4년, 그러니까 1차 세계대전 직전 무렵까지 유럽에서 가장 부강한 나라였다. 산업생산력은 말할 것도 없다. 과학, 문학, 그리고 철학에서도 단연 베스트였다. 교육시스템도 가장 뛰어났고 국민연금제도 최상급이었다. 그 나라가 그런데 한 번에 훅 갔다.

어느 나라를 말하나. 독일이다. 세계 주류 질서의 흐름을 잘못 판독하고 역행한 결과다.

전 세계 GDP의 30~50%를 차지했다. 은 보유량은 전 세계의 70%에 이를 정도로 전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였다. 1840년 아편전쟁직전의 중국, 청 왕조 이야기다. 청나라는 그 모든 부를 하루아침에 날리다 시피 했다.


스스로 천하의 중심이라는 오만에 사로잡혀 나라를 닫아걸었다. 세계의 흐름을 무시하고 쇄국주의노선을 걸어 온 결과다.

늑대전사, 인도와의 국경충돌, 남중국해 영유화 정책, 대만에 대한 군사적 압력, 그리고 호주에 대한 경제적 강압. 이스트-웨스트센터의 데니 로이가 열거한 시진핑이 저지른 다섯 가지 해외정책상의 최대 실수다.

무엇이 이 같은 심각한 오류를 불러왔나. 그 첫 번째 요인으로 지목된 것은 지나치게 중화민족주의에 영합해온 정책노선이다.

두 번째는 오만이다. 2008년 리먼브라더스도산 사태가 발생하자 베이징은 이를 미국의 쇠망신호로 받아들였다. 2012년 시진핑 등장과 함께 중국이 G2로 부상하자 미국 쇠망론은 확신으로 굳어졌다. 그 확신은 오만으로 변질되면서 베이징은 국제무대에서 거칠 것이 없는 제 멋대로의 행태를 보여 왔다. 특히 치명적인 실수는 일본과 인도를 적으로 만든 것이다.

시진핑 1인으로의 권력집중, 다시 말해 초 권위주가 그 세 번째 요인으로 꼽힌다. 권력집중은 개인숭배로 이어지면서 권력자 앞에서 입을 다무는 게 상책이라는 보신주의가 만연하게 됐다. 자체적 견제시스템이 무너진 것이다.

그 결과는 사면초가의 상황이다. 관련해 새삼 한 가지 질문이 던져지고 있다. 1914년의 독일, 혹은 1840년의 청 왕조가 맞이했던 상황에 베이징은 직면해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것이다.

청 왕조는 문을 닫아걸음으로써 문제를 해결하려 들었다. 그 같은 쇄국노선은 경제적 질곡으로 이어져 시진핑의 통치기반을 송두리째 무너뜨릴 수 있다. 남중국해에서 한 발 뒤로 물러난다. 이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그 경우 중화 내셔널리즘을 대대적으로 고취해온 정책과 모순이 발생, 시진핑은 외국의 압력에 굴복한 것으로 비쳐지면서 권좌에서 밀려날 수도 있다.


전쟁으로 난국 돌파에 나선다. 대만침공에 나서는 거다. 그 경우 군사적 패배는 차지하고 국제적 고립과 함께 자칫 공산당 독재체제 자체가 무너질 수도 있다.

따라서 일각에서 내려지는 결론은 이렇다. 시진핑 체제의 중국은 1914년의 독일, 혹은 1840년의 청 왕조가 맞이했던 상황보다 더 안 좋은 처지에 몰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스스로 고립을 불러온 시진핑의 해외정책, 이와 대조되는 것이 일본의 외교노선이다.

일본은 현대에 들어 거대한 국제적 변화의 물결에 대응해 세 차례 혁명에 가까운 해외정책의 변화를 꾀해왔다. 그리고 그 때마다 세계 역사의 흐름, 특히 동아시아의 역학구도에 결정적 영향을 끼쳐왔다.

그 첫 번째는 1850년대의 개항정책과 뒤따른 메이지 유신이다. 이를 통해 일본은 봉건국가에서 세계의 열강으로 변모했다. 이어 청과 러시아와의 전쟁을 모두 승리로 이끌면서 동아시아의 지정학을 바꾸었다.

두 번째는 1930년대의 군국주의 천황제파시즘으로의 변모다. 군국주의 일본은 미국과 충돌, 패망하고 만다. 세 번째는 전후 미군점령 하에서 이루어진 미일 안보체제로 일본은 방위를 미국에 아웃소싱하는 한편 경제발전에만 매진, 동북아의 경제적 발전과 안정을 견인했다.

“아베에서 수가, 그리고 기시다로 이어지는 자민당정부의 리더십 변화와 함께 일본은 또 한 차례의 혁명적인 해외정책 변화기를 맞고 있다.” 존스홉킨스대학의 역사학자 할 브란즈의 지적이다.

그가 특히 주목한 것은 아소 다로 부총리가 대만에 문제가 생기면 국가존망 위기사태로 제한적 집단 자위권 행사가 가능하다며 미국과 함께 대만방어에 적극 나설 방침을 시사한 것이다.

동맹정도가 아니다. 일본 자위대는 미군과 일체화되어가고 있다고 할까. 일본이 우방 등 다른 나라를 무력으로 보호할 수 있다는 집단적 자위권 허용한 안전보장관련법시행 5년을 맞아 드러나고 있는 현상이다. 게다가 쿼드 발족과 함께 일본과 미국의 동맹은 민주적 가치관 공유에서 공급 망 확보, 기술제휴에 이르기까지 전방위 동맹으로 업그레이드 됐다.

이 같은 흐름과 관련해 브란즈는 일본은 지난 세기 미영동맹에서 영국이 누렸던 위상을 차지할 것으로 내다보면서 이는 동북아의 역학구조에 엄청난 변화, 다시 말해 베이징으로서는 아주 불길한 사태로 이어 질 수 있다는 진단을 내리고 있다.

여기서 눈을 한국으로 돌려본다. 유럽순방에 나선 문재인 대통령. 뭔가 새로운 외교적 이니셔티브라도 있는지. 여전히 종전선언 타령에, 남북 쇼에만 매달리고 있다. 3년 전 만난 교황에게 또 다시 방북을 요청하면서. 뜬구름만 쫓는 그 모습이 이제는 정말이지 지겹다.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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