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장에 모인 100명 중 4명은 소시오패스다. 그 중엔 1명의 사이코패스도 들어있다. 어젯밤 넷플릭스에서 본 으스스한 살인마 이야기가 아니다. 유병률 각각 4%, 1%로 밝혀진 소시오패스, 사이코패스 스토리다. 내 주변에 멀쩡하게 걸어다니는 소시오패스. 어쩌면 오늘 아침 나의 굿모닝! 인사를 못 본 체 지나간 이웃, 직장 동료일 수도 있다. 이들이 싫어하는 건 필요 없을 때 찾아와서 친절하게 구는 사람들이다. 이들에게 ‘관계’란 자기 쪽에서 써먹을 일이 있으면 찾고 필요 없을 땐 차갑게 잘라버린다.
소시오패스 연구의 대가로 꼽히는 하버드대학 정신과 스타우트교수의 저서 ‘내 이웃의 소시오패스’에는 다양한 환자사례가 소개되어있다. 똑똑하고 잘생긴 청년 스킵은 어린 시절, 산 개구리 입안에 폭약을 쑤셔 넣고 폭발시켰던 장면을 짜릿하게 기억한다. 그 희열감을 잊을 수가 없다. 그는 화려한 학벌과 외모 덕에 사회적으로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다.
또 다른 직장인 도린은 자기보다 예쁘거나 더 빨리 출세한 동료들을 골탕 먹일 생각으로 하루를 보낸다. 몇 건은 교묘히 성공! 더 잔혹한 방식을 떠올리느라 머릿속은 늘 바쁘다. 그런가 하면, 덕망 높은 고교 교장인 한 남성은 가면 뒤에서 학생제자와 성관계를 갖고 마약에 손대며 살인을 범한다. 환자들은 비상한 머리로 남을 곤경에 빠뜨렸다가 자신이 불리하게 되면 약한 척 동정을 유발하는 일도 능하다.
소시오패스는 공식진단명은 아니다. 대신 반사회적 인격장애(ASPD) 안에서 설명된다. 진단은 적어도 18세 이상, 15세 이전에 품행장애 전력이 있다. 폭력적, 공격적, 충동적이고 법과 규율을 무시하며 거짓말을 일삼는다. 행동이나 성격적 스펙트럼이 너무도 다양해서 ASPD 중에도 한쪽 끝엔 소시오패스, 다른 쪽 끝엔 사이코패스가 있다. 자기 생각과 행동은 늘 옳다. 남을 속이고, 범죄를 저질러도 죄책감 따윈 없다.
빗나간 야망을 채우기 위해 착취하고 피해자의 고통엔 공감하지 않는다. 감정이 오르락내리락 기복이 심한 정신적 장애를 겪는다. 생각, 인지, 감정을 조절하는 전두엽의 기능은 약 15% 수준. 감정 고통에 무감각하고 양심 가책이나 윤리 개념도 없다. 아이오와 카버의대 정신과의 도널드 박사는 “이들의 삶은 평생 빗나간 행위로 이어진다”고 말한다.
요즘 한국 미디어에 소시오패스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본래는 정신병질(psychopathy) 성향이 높은 범죄자를 가리키는 개념이지만, 정치인이나 유명인사를 향한 공격용 단어로도 마구 쓰이는 모양. 실제 정신의학에서 사용되는 개념과는 거리가 있다.
한국경찰연구학회에서는 살인범, 성범죄자를 미디어에서 사이코/소시오패스로 부적절하게 부르는 것에 대해 우려한다(2013년 연구). 범인이 후회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거나 죄책감 표현이 없을 경우,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느끼지 않을 때 흔히 사이코/소시오로 언급하고 있지만 이것은 전체 진단기준의 일부일 뿐, 이를 ‘별종인간’으로 분류하고 “소시오패스니까 그런거지. 이제 알겠네. 문제 해결!” 이라기엔 설명이 너무 안이하다.
전문가가 대면 진료 없이 공인의 진단명을 미디어에 공표하는 것을 금하는 골드워터 룰. 타인의 위험 예방에 필수적이라면 비밀보장규칙을 깨고 폭로를 해야 한다는 테라소프 법규. 이 둘의 상충은 분명 딜레마이다. 더 중요한건, 저 인간 소시오패스! 걔는 우울증! 넌 ADHD! 제멋대로 갖다 붙인 병명은 ‘레이블’이 되어서 한 인간을 더 이상 깊이 있게 이해해볼 통로가 막힌다는 사실. 나에겐 그게 영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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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케이 임상심리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