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넷플릭스에서 한국 드라마 ‘오징어게임’이 영화 ‘기생충’에 맞먹는 한류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 한국적인 특유한 상황을 배경으로 한 사람, 아니 모든 사람이 어떻게 경쟁사회에서 이겨나가는가를 보여주는데 그 설정이나 인물이나 구성이 세계 모든 사람으로부터 공감을 일으키고 있다.
어느 유명한 철학자가 “사람이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질문을 했지만 인생은 결국 먹고 입고 마시기 위해 산다고 볼 수밖에 없다. 수염이 석 자라도 먹어야 양반이라는 말도 있듯이 사람은 삶의 환경이 여유가 있어야 한다. 물론 외부적인 환경의 풍요가 인생의 성공과 행복의 기준으로 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열심히 살아야 하고, 공부해야 하고, 노력해야 하는 이유는 다 그런 이유에서이다.
오징어게임은 어린 시절에 우리가 했던 놀이 다섯 개의 게임을 통해서 최종 승리자가 무려 456억을 받게 된다. 그 상금을 타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걸고 게임하는 참여자의 모습이 바로 내 모습, 우리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부끄럽기가 말할 수 없게 된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달고나, 줄다리기, 구슬치기, 그리고 징검다리 건너기가 있다. 이 모든 게임에서 혼자 살고자 하는 사람들은 죽는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런데 함께 살려고 서로 힘을 합치면 어떻게 해서라도 길이 보이는 것을 가르쳐 준다.
서로 경쟁해야 이기는 데 상대 노인이 젊은 주인공 상대에게 서로 ‘깐부’를 하자고 한다. 어린 시절로 돌아가 그 말을 언제 사용했는가를 연상케 한다. 그 때에는 ‘깐보’인 줄 알았는데 지금 보니 ‘깐부’라는 단어였다. 그 의미는 잘 모르지만 함께 서로 모든 것을 같이 해서 한 팀이 되는 단어이다.
혹시 영어로 ‘COMBO’나 아니면 ‘COMPANY’에서 나온 말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아이들이 딱지치기, 구슬치기를 할 때 그 모든 것을 함께 하는 것이 깐보, 깐부라고 한다. 절친한 친구, 의리, 함께 살고 함께 죽는 그런 어린 시절에 좋은 의미로 협력이고, 콜라보레이션이고 카르텔이다.
이 영화에서 노인은 깐부를 제시한다. 혼자 사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자고 제안한다. 이 세상은 함께 사는 세상이다. 깐부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그렇게 쉬운 것은 아니다. 함께 하려면 서로가 손해를 보고, 희생을 해야 한다. 내가 더 잘했어도 상대방이 잘한다고 칭찬해야 하고, 상대방이 못했어도 칭찬해야 한다. 그래야 다같이 살 수 있다. 이것이 정치이든, 운동경기이든, 사업이든, 단체생활이든 그래야 하는 것이다.
요즘 정치를 보면 깐부가 아닌 간부가 되는 것 같아 혼란하기 그지없다. 간부는 최고의 자리이다. 최고의 자리를 올라가기 위해서는 나 외의 다른 사람은 다 죽어야 한다. 그러기에 음모, 암투, 계략, 비방, 선동, 함정, 흑색선전이 난무한다.
아프리카 속담에 “빨리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말이 있다. 우리 마음에는 혼자 높아지려는 욕망이 있다. 그러나 삶의 지혜는 그 욕망을 깎아내리고 함께 가는 것이다. 잠깐의 즐거움과 만족을 누리다 사라지는 간부의 성공보다는 설령 힘들더라도 동거동락하며 행복하게 살아가는 깐부의 삶을 도전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
김범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