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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과 찰리

2021-10-16 (토) 김홍식 내과의사·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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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9일은 한글날 이었다. 영어 때문에 미국에서 얼마나 주눅 들어 살아 왔던가? 그런데 요즘 K-드라마, K- 팝, 한국 대중문화의 세계적 영향 때문에 어깨가 으쓱해진다. 많은 외국인들이 한글을 배운다고 하니 한글이 미래에 세계 공영어가 되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자녀들에게도 한글을 잘해야 된다고 하니 어떻게 한글이 만들어졌냐고 물어온다.

이전부터 우리말은 있었지만 이를 표기하는 문자가 없었던 조선시대의 네 번째 왕 세종대왕이 백성들이 글자를 몰라 자기 뜻을 제대로 펼치지 못하는 걸 안타깝게 여겨 글을 만들었으니 ‘훈민정음’ 이요,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는 뜻이다. 훈민정음 곧 한글은 원래 28개의 자모음으로 만들어졌는데, 현재는 자음14자와 모음 10자를 사용하고 있다. ‘한글’이라는 명칭은 1910년대에 주시경 선생을 비롯한 한글학자들이 쓰기 시작한 말이다 ‘한’ 이란 ‘크다’라는 뜻으로 ‘큰 글’을 의미하지만 넓게는 ‘으뜸가는 글’, ‘하나밖에 없는 글’이라는 뜻도 담겨 있다.

1443년에 창제된 훈민정음은 초창기 양반들의 반대에 부딪쳐 ‘부녀자와 상것들이 쓰는 문자’라는 인식이 팽배했으나, 점차 훈민정음의 우수성이 드러나면서 쉽게 익히는 국민들이 늘어나 한글 창제 450 년 후인 갑오개혁 때부터는 국문으로 공식인정을 받았다. 한편 한글날을 처음 기념한 것은 1926년 음력 9월 29일 지정된 ‘가갸날’이었다. 당시 일제 식민지하에서 억압된 삶을 살고 있던 우리 국민들을 위해 한글학자들은 민족정신을 되살리기 위해 한글날을 제정하여 기념하고자 했다. ‘가갸날’이라는 이름을 지은 것은 당시에는 ‘한글’이라는 말이 보편화되지 않았고, 한글을 배울 때 ‘가갸거겨...’ 하는 식으로 배웠기 때문이다. ‘가갸날’은 1928년 ‘한글날’로 이름을 바꾸게 되었고, 1945년 광복 후에야 비로소 10월 9일로 확정되었다.


세종대왕은 훈민정음 해례본에 한글의 제자원리를 밝혔는데 조선의 성리학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면서 발음 기관의 모양을 떠서 만들었다. 자음은 발음 기관의 모양을 본떠 5개를 만들었다. ㄱ 은 어금닛소리, ㄴ은 입 속 혀의 작용을 본 뜬 것이고, 입술소리 ㅁ, 잇소리 ㅅ, 목청소리 ㅇ은 각각 발음을 내는 입술, 치아, 목구멍의 모습을 본 뜻 것이다. 이 5개음이 모든 소리의 기본이 된다고 하였다. 모음은 조선의 전통적 사상으로 한민족은 숫자 3을 중히 여겼는데 세계를 구성하는 요소로 하늘, 땅, 인간으로 구분 하였다. 한글의 모음에 ‘아래아 (.)’ 는 둥근 하늘의 모습을,’_‘는 평편한 땅의 모습을,’ㅣ‘는 서 있는 사람의 모습을 각각 본떴다. 하늘과 땅이 생기고 그 속에서 인간이 대지에 발을 딛고 살아간다는 이치를 담고 있다. 위의 8개의 기본 자모음에 가획과 대칭이라는 단순하고 간단한 조형원리를 조화롭게 엮어 나머지 자모음이 만들어졌다.

가장 독특하고 과학적이며 경제적인 한글과 달리 영어는 단어의 수가 많아서 옥스퍼드 사전에 있는 십칠 만개 단어의 10% 만 알아도 신문을 읽을 수 있을 정도이다. 또 변화무쌍한 발음은 이민자들에게는 영원한 숙제이다. 예전 한국에서의 영어 교육은 외우고 쓰는 것은 하였지만 원어민과의 대화가 없어 책은 잘 읽을 줄 알아도 생활 영어로 듣고 말하는 것은 안 되는 이민 1세가 대부분이었다.

필자도 이민 초기에 영어가 귀에 안 들리고 말도 안 나올 때 하와이에서 어느 교회 앞의 ‘문맹 퇴치 반’ 팻말을 보고서 문을 두드렸더니 담당자는 금발의 미남 ‘찰리’를 소개해 주었다. 자원 봉사자였던 찰리는 고등학교 졸업 후 지병 때문에 고정적인 직장이 없어 가난했지만 남을 도와주겠다는 착한 사람이었다. 그는 누구를 가르쳐 본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나에게 어떻게 가르쳐 주면 좋겠냐고 오히려 물어왔다. 원어민의 영어를 못 알아듣는 이유를 생각해보니 단어가 붙어서 술술 넘어가는 언어이다 보니 연결되는 부분을 알아듣지 못하는 것을 깨달았다.

어린이 동화책과 신문을 읽어 달라고 부탁하였고 찰리가 천천히 읽는 문장을 나는 받아쓰기 하였다. 못 알아듣는 부분은 다시 돌아보아 책을 보고 적어 넣었다. 몇 달을 그렇게 하니 영어를 듣는 귀도, 미국 생활도 열렸다. 언어는 한 사람의 삶이요 정체성이며, 능력이다.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문맹 퇴치에 앞장섰던 세종대왕과 찰리의 사랑과 헌신이 너무나 감사할 뿐이다.

<김홍식 내과의사·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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