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사전에 훼절이라는 단어에는 두 가지 뜻이 나온다. 한자가 조금씩 다르기는 하나 ‘부딪쳐서 꺾이다’는 뜻(毁折)과 ‘절개나 지조를 깨뜨리다’(毁節)라는 의미인데 절개나 지조를 깨는 연유가 대개는 돈이나 권력에 맞닥뜨렸다가 깨어지면서 일어나는 결과물이므로 거의 같은 뜻으로 볼 수도 있다.
사람들이 평시에는 자기가 정해놓은 길로 곧잘 가다가 이해가 크게 상충되거나 어떤 격변기에 이르러 전혀 다른 길로 바꾸는 경우가 있다. 한국 역사에서도 일제 강점기나 해방 공간 시기까지 가지 않더라도 민주화 과정에서 큰 업적을 남기신 분들이 인생의 후반기에 길을 바꾼 분들을 종종 목격해왔다.
과거 민주당 지도자였던 박순천, 곽상훈 선생이 그랬다. 그 분들 모두 독립운동가로 민주화투사로 너무나도 공헌이 많았던 분들인데 그만 말년을 더 참지 못하고 독재정권에 협력해 오명을 남기신 분들이다. 그 뒤를 이어 김경재, 한광옥, 장기표, 김영환 같은 사람들도 엄혹한 시절에 민주화 운동에 앞장서왔던 사람들이었으나 일찌감치 훼절자의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훼절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자기 행위를 합리화하기 위해 말을 많이 한다. 시대가 달라졌으니 따라가야 한다느니,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호랑이를 잡을 수 있다느니 하며 자기를 변명한다. 때로는 자기의 이익을 위해 동지나 지지자들에게 욕설을 퍼 대거나 그들을 함정에 빠뜨리고 떠나는 사람들도 있다.
한국의 대통령 선거철을 맞아 이번에도 어김없이 말을 바꿔 타는 사람들이 눈에 띈다. 과거에는 약점을 잡힌 사람들이 회유나 압력을 받아 정당을 바꾸는 일이 많았지만 요즘은 개인의 정치적 야심 때문이 대부분이다. 미국 정당사에도 당적을 옮기는 사람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은 정치 이념과 정책에 따라 움직였지 사사로운 감정으로 그렇게 한 경우는 극히 드물다.
정치인들이야 그렇다 치고 언론인, 문인들의 훼절은 더욱 안타깝다. 마침 올해 노벨평화상은 독재와 맞서 싸우며 표현의 자유를 지킨 필리핀과 러시아의 두 언론인에게 돌아갔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60년대에 크게 존경받던 언론인 중에 천관우 선생이 계셨다. 당대의 대표적인 문필가이자 역사가이며 자유당 치하와 박정희 유신시절 함석헌, 안병무, 송건호, 김중배 선생들과 함께 반독재 민주화운동을 치열하게 전개하셨던 분이다. 그렇던 그 분이 인생의 종착지에 이르러 전두환 군사정부의 국정자문위원 등을 맡아 군부에 협조하는 바람에 동료들로부터 매장 당하다시피 지내다가 쓸쓸하게 돌아가시고 말았다.
역사의 경험으로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훼절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결코 바꾼 그 길에서 성공하거나 영화를 누리지 못할 뿐 아니라 오래지 않아 잊혀진 사람이 된다는 사실이다. 조지훈 선생의 ‘지조론’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사람이 평생을 같은 길을 걸으며 지조를 지킨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최근에 나는 “내가 가는 길은 이런 길 이었다”는 제목의 책을 출간했다. 보기에 따라 조금은 오만하게 비칠 수 있었으나 그렇게 함으로 해서 남은 인생 스스로의 규제와 사회에 대한 약속의 의미로 삼으려는 생각도 없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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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현 한민족평화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