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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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아 오키프

2021-10-02 (토) 손주리 / 플로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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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알쓸신잡 속에 자리잡고 있는 인물 중에 조지아 오키프(Georgia O’Keeffe, 1887~1986)가 있다. 넷플릭스의 리얼리티쇼 ‘넥스트 인 패션’ 결승에서 한국인이 프리다 칼로의 여성성과 강인한 인간성을 주제로 옷을 디자인해 우승한 것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그녀가 떠올랐다.

‘아메리칸 모더니즘의 어머니’로 알려진 오키프는 강렬한 색채와 추상화된 꽃그림들로 주목을 받기 시작한 후, 뉴욕의 스카이라인과 뉴멕시코의 풍경을 즐겨 그렸던 추상표현주의 작가다.

오키프에게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몇 년 전 드 영 뮤지엄에서 그녀의 전시회를 본 뒤부터다. 그 전시회에서 인상 깊었던 것은 역시 꽃그림이었다. 여성의 신체적 특징을 연상시키는 꽃들이 추상적으로 혹은 사실적으로 표현되었는데 페투니아, 칸나, 칼라릴리, 특히 아이리스는 특정 부위를 해부하듯이 묘사하고 있는 듯 충격적이었다.


“아무도 꽃을 보려 하지 않아. 꽃은 너무 작고 사람들은 시간이 없지. 친구를 사귀는 데 시간이 걸리는 것처럼 꽃을 보는데도 시간이 걸려…”라면서 사람들에게 꽃을 제대로 보여주기 위해 크게 그리기로 했다는 오키프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내게는 그 그림들이 자화상처럼 느껴졌다. 화가들은 어떤 때 자화상을 그릴까? ‘여성화가’라고 성별 구분하는 것을 싫어했다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 여성이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을 확인하기 위해, 자기 성찰의 첫 단계로 자신을 그렸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후원자이자 남편이었지만 예술만큼이나 여자를 좋아해 상처도 함께 주었던 사진작가 스티글리츠를 끝까지 보살핀 후, 뉴멕시코로 이주하여 여생을 보냈다. 뉴멕시코 특유의 광활하고 황량한 자연은 오키프의 색채와 화풍을 크게 변화시켰다. 사막과 돌산을 섬세하게 묘사함으로써 대상의 본질을 잡아내려는 그녀의 의지는, 자연(nature) 속에서 여성이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본성(nature)을 천착해 들어감으로써 인간적 성숙을 이루었던 건 아니었을까.

황막변색증으로 시력이 약화된 73세에도 하늘, 구름, 강을 소재로 새로운 화풍, 즉 미니멀리즘적 추상을 시작했다. 인생을 관조한 뒤 필요 없는 것을 덜어내면 본질만 남는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그의 구름 그림은 아름답다.

“어디에서 태어나 어디서 어떻게 살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진정 관심을 가져야할 것은 그곳에서 무엇을 하며 살아왔느냐는 것이다.”

<손주리 / 플로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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