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안 혐오라는 불편한 진실 앞에서
2021-09-29 (수)
김병호 목사
코로나의 부작용으로 들불처럼 일어난 아시안 혐오가 미국사회 안에 여전히 핫이슈가 되고 있다. 속히 잠잠해지기를 기다리지만 당장 쉽게 사그러들 기세가 아닌 것 같다. 아시안 아메리칸 이민자들로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당장 두려운 일이다. 그렇지만 미국이민 역사를 보면 이런 식의 극단적인 혐오가 종종 있어왔다.
다인종이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지고 하나의 샐러드 보울처럼 합중국을 이루어 사는 것이 미국이다. 그 속에서 미합중국의 시스템에 제대로 융화되지 못하고 살아가는 우리들의 자세에도 문제가 있겠으나 이 문제는 좀 더 근원적인 데 있는 것 같다. 그 근간은 백인우월주의로부터 시작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내건 미국우선주의가 아시안 혐오를 더 부채질했다.
미국은 이민자들로 이루어진 나라이다. 회교도의 발흥으로 지중해의 무역이 막히자 유럽은 아메리카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고, 아메리카는 유럽인들의 식민지로 시작하여 오늘날 미국을 비롯한 독립국가들을 이루게 되었다. 원주민들이 총과 세균으로 거의 몰살당하자 노동력의 대안으로 아프리카 흑인들을 노예로 데려와 아메리카를 건설했던 배후에는 백인우월주의라는 부인할 수 없는 자부심이 있게 된 것이다.
이들은 주류라는 중심적 사상으로 스스로를 무장한 채 다양한 인종적 배경을 가진 이민자들을 주변인으로 정의하여 담을 쌓고 구분하면서 경계해왔다. 세계에서 최고로 자유민주주의가 발전된 나라라고는 하지만 아직도 이 근본적인 편견은 깰 수 없는 높은 유리창으로 존재한다. 구약성경에 보면, 아브라함의 조카였던 롯이 머물던 소돔성에 어느 날 저녁 두 명의 나그네가 방문을 한다. 롯이 그들을 집으로 초청했을 때 소돔성에 살던 남자들이 몰려와 나그네를 우리가 상관(?)할테니 내달라고 소리쳤다. 롯이 만류하자 소돔 사람들이 롯에게 ‘이놈이 자기도 나그네살이를 하는 주제에 우리에게 재판관 행세를 하려고 든다’라면서 화를 낸다.
‘나그네살이를 하는 주제에’라는 말을 들은 롯은 20년 이상 소돔 땅에서 살고 돈도 많이 벌었지만 자신의 이름으로 된 한 평의 땅도 소유하지 못했다. 아브라함 역시 죽은 부인을 매장할 땅조차 가지고 있지 않았다. 주류인 소돔 사람들에게 롯은 재산이나 거주 연한과 상관없이 비주류였고 나그네였을 뿐이다.
소돔 남자들이 나그네를 상대하겠다는 이 장면은, 동성연애가 판치던 타락한 시대상황에서 나그네와 성행위를 하겠다고 협박하는 것으로 보통 해석하지만, 그런 뜻이 아니다. 그 도시에 들어온 외지인(외국인)에 대하여 집단적으로 모욕하고 욕보이겠다는 것이다. 외지에서 온 나그네들을 모욕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비이성적인 외지인 혐오에 붙들려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늘날 혐오의 대상이 되어 살아가는 우리들이 알아야할 사실이 있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이 땅에서 나그네라는 사실이다. 우리는 어디에서 살든 세상에서는 나그네요 ‘사는 날이 그림자 같다’는 겸손함이 필요하다. 아시안 아메리칸으로서 주류의식에 함몰되어 살 것이 아니라 내 삶이 ‘나그네살이하는 주제’인 것을 기억하면서 함께 걸어가는 모든 사람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고 사랑하고 베풀면서 살았으면 좋겠다. 이런 삶이 미국의 희망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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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호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