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철의 철학경영] 꼭 필요할 때만 나서라
2021-09-23 (목)
김형철 전 연세대 교수
유난히도 비가 많이 왔던 여름이었다. 그날도 초저녁부터 비가 줄기차게 내린다. “우르릉 탕탕 꽈르릉” 천둥과 번개가 번갈아 가면서 때린다. “콰광” 하는 소리가 새벽에 들린다. 영감은 불길한 예감에 벌떡 일어나 마당으로 뛰쳐나갔다. 아니나 다를까 옆집 담장이 무너져 내린 것이다. 이웃집 젊은이는 자기 집 담장이 무너졌는데도 태평하게 자고 있다. “여보게, 자네 집 담장이 무너졌어. 빨리 고쳐 보게.” 잠에서 막 깬 이웃은 귀찮다는 듯이 “내일 아침에 손 볼게요” 하고 대꾸한다. “아니, 그러다가 밤새 도둑이 들면 어떡하려고 그래. 빨리 고치는 게 좋을걸.” 그다음 날 아침 정말 도둑이 들어 다 훔쳐갔다. 2,500년 전 중국의 철학서 ‘한비자’에 나오는 에피소드다. 여러분이 그 젊은이라면 도둑이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제일 먼저 옆집 영감이 떠오르지 않는가.
얼마 전 지방에 갔다. 그날 강연도 평소같이 우레와 같은 박수로 잘 마쳤다. 다시 집으로 가려고 기차역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화장실로 갔다. 먼 길을 떠나기 전에 늘 가는 것이 습관이 됐다. 그런데 변기 위에 신용카드와 신분증이 한 30장 정도 가지런히 놓여있는 게 아닌가. 직감적으로 ‘이건 소매치기다’라는 생각에 일을 끝내자마자 바로 안내 센터로 갔다. “손님, 혹시 지갑은 없었나요.” “없었는데요. 카드들만 덜렁 있었어요. 그런데 그건 왜 물어보세요.” “주인이 이런 경우에 꼭 지갑이 없었냐고 꼭 물어보니까요.” “아, 그래요. 어쨌거나 주인 꼭 좀 찾아주세요. 애타게 찾고 있을 텐데.” “경찰에 신고해드릴게요. 참, 휴대폰 번호와 이름을 여기에 적어주세요.”
이후 필자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새벽부터 움직인 탓에 바로 잠이 들었는데 전화가 왔다. “지갑을 잃어버린 사람입니다. 우선 고맙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혹시 지갑은 없었나요.” “역시 안내 센터 사람들이 경험치가 많구먼. 없었는데요.” “어디서 찾았나요.” “역 구내 화장실이요.” “몇 번째 칸이죠.” “으음, 세 번째 아니면 네 번째요.” 이윽고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제가 모든 가능성을 다 열어놓고 물어보겠습니다. 그 지갑 가져가신 건 아닌가요.” “아닙니다.” “어제 어디에 있었습니까.” “성남이요.” 마지막으로 더욱 떨리는 목소리로 “이거 추적 조사하면 다 나오는데 거짓말하시는 건 아니시죠.”라고 한다. “거짓말하지 않습니다.” “다음에 또 연락드릴게요.” 통화는 이렇게 끝났다.
갑자기 지갑 주인에게 ‘취조’당하고 난 뒤 30여 분 동안 영 기분이 좋지 않았다. 이때 경찰관에게 전화가 왔다. 기회다. 세상에 지갑 훔쳐 간 사람이 카드 되돌려주면서 전화번호까지 남기는 경우를 본 적 있는가. 착한 일 하려다가 이게 무슨 꼴인가. 전화번호를 알려주는 게 아니었다. 따질 것을 따져야지. 지갑을 보지도 못한 사람한테 그처럼 물어보는가. 경찰관에게 마구 퍼부었다. 경찰관은 웃으면서 주인이 젊은 사람인데 지갑이 꽤 비싼 것이라고 말하더란다. 이런 봉변당하고 나서 다음에도 신고해야 할까. 아니, 그래도 신고해야지.
최근 제주에서 특강이 있었다. 비대면이지만 현장 스튜디오에 와달라는 요청이 있었다. 특강을 마치고 부산으로 가려고 공항에서 줄을 서 있었다. 그런데 앞 사람의 백팩이 활짝 열려있다. 안쪽에 지갑도 보인다. ‘이걸 어쩌지. 말할까 말까.’ 고민하다가 말했다. 그랬더니 “알고 있어요”라는 퉁명스러운 대답이 돌아왔다. 다행이다. 알고 있었다니 위기 대처 능력이 있는가 보다. 그런데 모기만 한 목소리로 “남이야”라는 말이 들렸다. 이런 핀잔을 들을 줄 알았으면 말하지 말 걸 그랬나. 내려서 집으로 가는 전철을 탔다.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런데 건너편 자리에 앉은 노인 한 분이 손에 휴대폰을 든 채 꾸벅꾸벅 졸고 있다. 그 핸드폰은 바닥을 향해 미끄러져 내려가고 있다. 이런 정도는 말하지 않는 것이 상책이다. 떨어지더라도 깨지지도 않을 것이며 돈이 들어있는 것도 아니고 빤히 쳐다보고 있으니 누가 가져갈 리도 없다. 꼭 필요할 때만 나서라. 시도 때도 없이 나서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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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철 전 연세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