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실질’과 ‘상징’을 구분할 줄 알아야

2021-09-17 (금) 김홍식 은퇴의사 라구나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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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적인 것이든 정신적인 것이든 우리의 삶에서 모든 것에는 그 경중을 비교하는 ‘가치’라는 것이 매겨져있습니다. 그것을 결정하는 요인은 ‘필요’의 경중에 의할 것인데 그 ‘필요’라는 것에는 공기처럼 생명에 필요한 ‘실질적’ 필요와 보석처럼 가치를 인위적으로 부여하여 정한 ‘상징적’ 필요를 구분하여 생각하렵니다.

일상생활에서는 상황에 따라 필요가 달라지고 경중이 뒤바뀔 수도 있으니 그들을 똑같은 반열에 놓고 일률적으로 비교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이 두 가지를 경우에 따라 구별할 줄 아는 능력에 따라 지혜로운 사람인지 어리석은 사람인지 구분될 것입니다.

일상적인 상황에서는 금 10kg이 쌀 10kg보다 훨씬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조난당해 무인도에서 굶어 죽기 직전의 상태인데도 쌀 아닌 금을 선택한다거나, 망망대해에서 파선 직전에 생사가 달린 상황에서 구멍을 막을 10달러짜리 판자 한쪽과 100만달러짜리 다이아몬드 뭉치 중 어느 것에 더 큰 가치를 두어야 할지를 모른다면 그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또 이런 물질적인 것뿐만이 아닌 일상의 사회제도에서의 가치도 있습니다. 결혼식이나 장례식 같은 것은 실질적으로 반드시 필요한 행사가 아니요 있으면 좋고 없어도 큰 상관없는 인위적으로 가치를 부여한 상징적 행사요 절차입니다. 사랑하는 사람간의 사랑 행위나 부모 사망 이후의 처리도 결혼식과 장례식이라는 절차를 거치지 않으면 죄인처럼 떳떳하지 못하게 되는 것은 사회생활에 인위적으로 부여한 상징적 가치 때문이지 그것 자체가 죄악은 아닙니다.

포목점에서 하얀 천 한 필을 사 와서 옷을 만들고 일부로는 태극기를, 또 나머지로는 걸레로 만들었습니다. 걸레를 천하게 사용하는 것은 당연한데 태극기를 걸레로 삼거나 불태우면 국기를 모독하였다 하여 심지어는 나라간의 전쟁의 발화점이 될 수도 있습니다. 똑같은 천인데도 태극기에는 중요한 ‘상징적’ 가치가 부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3,000달러가 있다면 총살형 면할 수 있는 탈북자의 경우나 마실 물 얻을 우물이 없어 죽어가고 있는 아프리카 아이들을 도울 수 있는 ‘실질적’ 처지를 바로 옆에서 보면서도 못 본 척하며 거금을 ‘상징적’ 의식에 낭비하는 사람이라면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죽음을 매일 대하는 의사의 관점으로 볼 때 사람의 가치란 눈에 보이지 않는 생명에 있는 것이지 보이는 몸뚱이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기에 생명 떠난 순간 아무리 사랑했던 사이였더라도 그 몸뚱이는 오히려 징그러운 시체덩어리일 뿐입니다.

그러기에 이제는 어떻게 취급해도 상관없는 ‘실질적’ 가치는 없는 것인데도 사람들이 ‘상징적’ 가치를 부여했기에 정중하게 그것을 모시고 거창한 장례식이라는 것을 치르는 것뿐입니다. 평소 불효했던 사람일수록 양심의 가책을 보상하기 위해 더 거창한 묘소, 더 거창한 장례식을 하는 것이 일반적 경우입니다.

물론 상징적이라 하여 그런 사회적 제도 자체를 부정하거나 필요 없다는 것이 아니요 현실 생활에서는 두 가지가 다 필요합니다. 다만 만약 이 두 가지 중 어느 것 하나만을 선택해야하거나 중점을 두어야할 상황에서는 ‘상징적’일 뿐인 허상에 ‘실질적’ 가치가 덮이지 않도록 현명한 가치 비교와 판단을 해야할 것입니다.

<김홍식 은퇴의사 라구나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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