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24시] 아프간 사태가 타산지석이 아니라고?
2021-09-16 (목)
박휘락 국민대 교수·정치학
미군이 지난달 2일 바그람 공군기지에서 철수한 지 한 달 남짓 만에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하고 말았다. 외부에서 보면 정권 교체에 불과할 수도 있지만 일부 아프간 국민들에게는 생사의 문제이다. 지금은 외부의 이목 때문에 자제하고 있지만 곧 아프간 정부에 종사했거나, 미군에 협력했거나, 자신들의 통치에 방해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엄청난 보복이 가해질 것이다. 이미 불법적인 처형의 사례가 다수 보도되고 있다. 그것이 두려워 수많은 아프간인들이 지상으로, 그리고 미 수송기로 필사적으로 탈출하는 것 아니겠는가.
6·25전쟁과 그 이후의 도발을 통해 탈레반보다 더욱 억압적일 수 있는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한국으로서는 당연히 유사한 일이 벌어질 가능성을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북한은 100개 정도의 핵무기를 만들어서 우리를 위협할 뿐만 아니라 미국이 한국을 지원하지 못하도록 협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 정부와 군대는 아프간 사태에서 교훈을 도출하기는커녕 걱정 자체를 원천 봉쇄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과 한국은 다르다” “주한미군 철수는 없다” “조 바이든 대통령도 그렇게 말했다”고 말한다. 유럽 국가들도 미국을 믿을 수 없다면서 자주국방을 강화해야겠다고 주장하는데 휴전 상태에서 핵 위협에 직면한 우리는 태평이다.
1975년 남베트남의 패망과 그 이후의 잔혹한 처형을 보면서 한국은 유사한 사태가 한국에서 발생할까 봐 자주국방 노력을 더욱 강화했고 ‘한미연합사령부’를 창설하는 등 한미 동맹을 강화했으며 국민들의 총력안보 태세를 촉구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무런 자체적인 점검과 보강 노력이 없다. 필자는 이것이야말로 한국에서 아프간 사태가 재연될 수도 있다는 가장 강력한 증거라고 생각한다. “미군은 철수하지 않아, 북한은 전쟁을 발발할 힘이 없어, 우리 군은 강해”라는 자기최면으로 국가의 안전을 보장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번 아프간 사태로 대부분의 국민들은 분명하게 깨달았을 것이다. 자기 나라를 지킬 의지가 없는 국가와 군대를 외국이 도울 수는 없다고.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북핵으로부터 우리 스스로를 지키고자 하는 의지가 있고, 태세를 강화하고 있는가. 정부는 ‘외교적 비핵화’라는 허망한 목표를 세워둔 채 북핵을 회피하고 있고, 군대는 홍길동전처럼 북핵을 언급하지도 못하고 있다. 그러면서 미국에 북핵을 없애주고, 유사시 핵우산으로 우리를 지켜주라고 한다. 큰 틀에서 이것이 아프간과 무엇이 다른가. 북한군이 120만 명에 달하는데도 우리는 군대를 지속적으로 감축하고 있고 훈련도 제대로 실시하지 않으며 최근 성범죄 등에서 보듯이 군대의 군기·사기·단결에는 심각한 문제가 드러나고 있다. 북한군이 기습적으로 공격해올 경우 정부와 군대가 일방적으로 도주 또는 투항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는가.
아프간 사태 이후 미국이 한국을 포기할 것이냐, 아니냐를 두고 논쟁하는 것도 한국에서의 아프간 사태 재연을 걱정하게 만든다. 미국의 대통령이나 장관의 구두 약속이 무슨 의미가 있다는 것인가. 미국뿐 아니라 모든 국가는 동맹의 약속보다 자신의 국익을 더욱 우선시한다. 미국이 한국을 포기하더라도 스스로 지킬 수 있는 태세를 강화하지는 않고 어찌 미국이 철수하지 않을 것이라는 장담만 하는가. 나중에 미국이 핵우산을 제공하지 않겠다거나 철수해야겠다고 결정하면 울면서 원망만 할 것인가.
아무리 장담하고 기원을 해도 현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그 현실은 북한이 핵무기를 계속 증강하고 있고 미국 본토를 공격하겠다고 위협해 미국의 핵우산 이행을 불가능하도록 만들고 있으며, 한국은 이러한 사태에 대해 전혀 대비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 상황에서 우리의 안전을 보장하는 일은 우리 스스로의 북핵 대비 태세를 강화하고 미국이 한국을 포기하지 못하도록 한국의 가치를 높이는 길밖에 없다. 제발 정부는 현재의 안보 상황을 냉정하게 평가하고 아프간 사태의 교훈을 다각적으로 분석해 유사한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조치하라. 아프간 사태에서 교훈을 얻을 게 없다면서 어찌 안보를 걱정한다고 말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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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휘락 국민대 교수·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