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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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미료보다 뭉근한 자연의 맛… 하트 물길 속 ‘옥화9경’ 매력

2021-09-10 (금) 청주=글 최흥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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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박자박 소웁탐방 - 청주 미원면 옥화9경과 미동산수목원

청원군과 통합하며 청주 땅이 넓어졌다. 시내 동북쪽 끝에 미원면이 있다. 조미료의 대명사가 된 브랜드와 발음이 같지만 뜻은 완전히 다르다. 예부터 가뭄에도 물이 마르지 않아 쌀농사가 잘되는 지역이었다. 미원(米院)은‘쌀안’을 한자로 옮긴 말이다. 그렇다고 들이 넓은 건 아니다. 보은 속리산과 이웃하고 있지만, 단번에 눈길을 사로잡을 만한 절경은 없다. 이름난 계곡이 있는 것도 아니고 산세가 빼어나다 하기도 힘들다. 평범한 농촌마을이 고만고만 산자락에 하천을 끼고 터를 잡은 모양새다. 그래도 골짜기를 휘감는 물줄기를 따라가면 곳곳에 뭉근한 매력이 숨어 있다. 입안에 감칠맛이 확 번지는 인공조미료보다는, 오래 음미할수록 다양한 재료가 어우러져 오묘한 맛을 풍기는 천연조미료 같은 곳이다.

■뒤늦게 알아봤다, 하트 물길 속 그 마을의 매력

미원면이 자랑하는 풍광으로 옥화9경이 있다. 조선 중기의 학자 이득윤(1553~1630)이 낙향한 뒤, 달천(감천) 주변 옥화리의 아름다운 풍광을 보고 1곡부터 9곡까지 설정한 데에서 유래한다.


시작은 기암괴석과 숲이 어우러진 청석굴이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달천을 가로지르는 도보 다리를 건너면 오른편으로 제법 높은 바위봉우리가 보인다. 반원 형태로 파인 하부 바위에 암벽타기용 고리가 박혀 있다. 1992년 국내 최초로 개설된 석회암 암벽장이다. 바로 옆에 봉우리로 올라가는 목재 계단이 설치돼 있다. 꼭대기에 오르면 하천 주변에 자리 잡은 마을과 들판이 평온하게 내려다보인다.

청석굴은 봉우리 아래, 암벽장에서 불과 100m 정도 떨어져 있다. 굴은 거창한 이름에 비해 규모가 크지 않다. 전체 길이 60m지만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곳은 그 절반도 못 된다. 2014년 국립문화재연구소 조사에서 관박쥐 30마리를 비롯해 20여 종의 생물이 서식하는 것으로 확인됐고, 주민들은 황금박쥐도 봤다고 주장한다. 시간을 더 거슬러 올라가면 찍개와 긁개, 주먹대패 등이 발견된 구석기시대 유적이기도 하다.

자연의 보금자리이자 오랜 인류의 역사를 간직한 곳이라는 설명이 무색하게 지금의 청석굴은 평범한 폐광처럼 보인다. 그래도 천장이 높은 굴 안으로 들어가면 서늘한 기운이 감지돼 더위와 눅눅함을 피하기에 그만이다. 요즘은 인증사진 여행지로 소비되고 있다. 굴 안에서 바깥쪽으로 찍으면 제법 신비스러운 분위기가 감돈다.

이곳에서 물길을 따라가며 옥화9경이 이어진다. 하천 변으로 걷기길이 조성돼 있지만 아직까지 이용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 옥화9경의 두 번째는 용소다. 달천에서 수심이 가장 깊고 물살도 센 곳이다. 소용돌이치는 물살보다 더 눈길을 잡는 것은 용틀임하듯 뒤틀린 퇴적 암반층이다. 지층마다 억겁의 시간을 품고 있을 퇴적암이 마치 태극문양처럼 둥근 곡선을 그리며 작은 봉우리를 형성했다.

사실 옥화9경의 진정한 멋은 숲에 가려 잘 눈에 띄지 않는 지층에 있다. 청석굴 입구의 암반도 자세히 보면 주상절리처럼 갈라졌으면서 일부러 구부린 것처럼 유려하다. 용소의 태극문양 암반은 강 맞은편에서 잘 보이는데, 이미 펜션이 명당을 차지하고 있다. 3경 천경대 역시 강변 퇴적암층 위에 작은 숲을 이고 있는 모양이다. 절벽 아래 맑은 물이 하늘을 비추는 거울 같다는 의미인데, 실제보다 부풀려진 작명이다. 주변 하천은 지역 주민과 피서객이 물놀이장으로 이용하고 있다.

하이라이트라 할 4경 옥화대는 전망 좋은 누각이 아니라 용소 일대 강 언덕을 두루 지칭하는 말이다. S자로 휘어지던 달천은 이 구간에서 두 차례 연속으로 곡선을 그리며 하트 모양을 형성한다. 그 양쪽이 옥화리 마을이다. 강 언덕 마을 입구에 커다란 느티나무가 서 있고 그 아래에 옥화서원이 있다. 이득윤을 비롯해 윤사석 박곤원 윤승임 4명의 학자를 배향하고 있는데, 모두 마을 입향조거나 청주 유교문화의 뿌리를 형성하고 있는 인물이다. 대문이 잠겨 확인할 수 없었지만, 강학당이나 유생들의 숙소, 공자의 위패를 모시는 대성전 등 전형적인 서원의 구조를 갖추지는 못한 듯하다.

서원을 돌아가면 파평 윤씨 재실이 보이고 숲속으로 발길을 옮기면 청명한 가을달과 어울린다는 추월정, 세상 모든 경치를 감상할 수 있다는 만경정, 마음을 닦고 씻는다는 세심정 3개의 정자가 가까운 거리에 흩어져 있다. 요즘으로 치면 옥화서원의 부속건물이라 할 수 있다. 글공부에 지친 스승과 유생들이 시원하게 강줄기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서 머리를 식힐 만한 곳이다. 정자로 이어지는 오솔길은 잘 닦여 있지만 찾는 이가 거의 없어 마루에 먼지가 뽀얗게 앉아 있다.


옥화대에서 바로 이어지는 금봉은 달천 물줄기가 크게 휘어지며 만들어진 표주박 형태의 산봉우리다. 봉우리 아래 하천 절벽을 따라 목재 덱이 놓여 있다. 물 위에 놓인 길이지만 단풍과 커다란 참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어 잠시나마 숲속을 걷는 기분이다.

6경 금관숲에서 9경 박대소는 금봉에서 조금 떨어진 하류에 잇닿아 있다. 금관숲은 하천 주변에서는 보기 드물게 아름드리 떡갈나무와 신갈나무가 일정한 간격으로 자리 잡았다. 짙은 나무 그늘 아래는 캠핑장으로 이용되고 있다. 풀 한 포기 없이 매끈하게 정리돼 있어 숲이라는 명칭이 다소 무색하다. 바로 옆에는 줄지어 새로 심은 느티나무가 자라고 있다.

7곡 가마소뿔은 경치보다 이름에 얽힌 전설이 애잔하다. 막 혼례를 마친 신부를 태운 가마가 이곳을 지나다가 그만 물속에 빠졌다. 애통해하던 신랑도 함께 뛰어들어 목숨을 잃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곳이다. 8경은 주변에서 가장 높은 신선봉(630m)을 일컫는다. 달천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으니 억지로 끼워 넣은 듯하다. 9경 박대소는 포장도로에서 하천 변 비포장 자갈길을 따라 1km 정도 들어가야 나온다. 제법 높은 산자락에 병풍처럼 둘러싸인 지형으로, 폭포는 없지만 물이 깊고 물살이 센 곳이다. 길 끝에 펜션 한 채 외에 민가가 없어 세상 끝 깊은 산중 같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한나절 녹음 산책… 아기자기한 미동산수목원

미원면 소재지 동쪽, 미동산(559m) 골짜기에 아담한 수목원이 있다. 산자락 전체를 포함하면 250만㎡에 달하는 대규모 숲이지만, 계곡 따라 이어진 숲길은 경사가 완만해 가볍게 산책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미동산수목원은 충청북도에서 관리하는 시설로 산림과학박물관과 산림환경생태관, 난대식물원, 다육식물원, 식충·공중식물원 등 전시 겸 연구용 식물원을 보유하고 있다. 수목원의 재미를 더해주는 양념 같은 시설이다.

수목원 방문객의 주목적은 아무래도 숲길 산책이다. 방문자센터를 통과하면 왼쪽으로 유전자보존원이다. 다양한 나무와 꽃을 한데 모아 정원처럼 아기자기하게 꾸몄다.

피톤치드 발생량이 많은 화백나무가 줄지어 서 있고, 쪽동백과 다릅나무 등 생소한 이름을 가진 나무들이 군데군데 포진하고 있다. 나무 아래 화단에는 마타리와 산비장이, 구절초 등 늦여름·초가을 꽃들이 한창이다.

무궁화 화분과 전나무 가로수가 운치 있는 도로를 따라 올라가면 계곡 우측으로 ‘열린마음나눔길’이 이어진다. 소나무, 참나무, 벚나무 등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천연 숲에 낸 덱 산책로다. 생태연못이 조성된 계곡 맞은편은 메타세쿼이아 숲길이다. 수목원을 개장한 지 올해로 20년, 아름드리 숲으로 성장한 이 길이 수목원을 대표하는 명소가 됐다.

산꼭대기 전망대까지 가려면 등산을 해야 하지만, 계곡 상류 수생식물원까지는 누구든 편하게 걸을 수 있다. 2시간가량 잡으면 여유롭게 숲 산책을 즐길 수 있다. 수목원으로 들어서는 도로에는 보은 속리산 정이품송 후계목이 가로수로 심겨 있다.

<청주=글 최흥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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