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치 관찰자들이 큰 관심을 보이는 질문 중 하나가 ‘트럼프 현상’이 미국에서 재연될 수 있을지 여부다. 도널드 트럼프와 같은 선동적 정치인이 다시 등장해 민주주의를 혼돈으로 몰아넣는 현상이 반복되지나 않을까 하는 의문 말이다. 지난 2020년 대선이 부정선거라는 믿음이 보수적 유권자 가운데 강하게 자리 잡고 있는 현상이나 1월6일 친트럼프 폭도의 의사당 점령 사건에 대한 공화당 정치인의 미온적 대응을 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 하는 우려도 근거 없는 걱정만은 아니다.
트럼프 현상의 재연 가능성은 결국 오는 2024년 미국 대선의 승자가 누가 될 것인가에 관한 것이고, 이는 2022년 의회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다시 승리할 것인지를 통해 가늠해볼 수 있다. 지금 민주당은 상원에서 공화당과 50 대 50으로 의석을 반분한 상황에서 카말라 해리스 부통령의 캐스팅보트 덕에 과반의 명줄을 겨우 유지하고 있고 하원에서는 아주 근소한 차로 다수당의 지위를 가까스로 지키고 있는 형편이다.
이런 초미세 의석 격차를 두고 공화당 지도부는 퇴임한 트럼프는 물론 그의 지지자를 보듬으며 내년 중간선거에서 양원 탈환을 위해 절치부심하고 있다. 민주당의 중간선거 승리 여부는 결국 조 바이든 대통령의 국정 성과 도출과 민주당 지지층의 선거 동원 수준이 결정해줄 것인데, 이런 사정을 염두에 두고 민주당은 3월11일 공화당의 반발을 뚫고 바이든표 팬데믹 구제법안을 가까스로 통과시킨 바 있다.
내년 중간선거 승리를 위해 살얼음판을 걷는 바이든 대통령과 민주당 지도부 앞에 꽤 복잡한 장애물이 몇 개 가로놓여있다. 당내 진보파와 온건파 간의 갈등이 그중 하나다. 하원 진보파 의원들은 10일 바이든 대통령의 지원 하에 상원 민주당이 통과시킨 1조 달러 규모의 인프라 법안에 대해 공화당과의 타협에 치중한 나머지 자신들이 원하는 내용을 누락시켰다며 하원 표결 자체에 반대하고 있다. 그래서 상원이 별도로 3조 달러 이상의 대규모 사회복지 안전망 법안을 통과시켜 하원으로 보내지 않는 이상 단독으로 인프라 법안만을 표결할 수 없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상원 공화당이 이런 요구에 한 명도 동조하지 않는 가운데 하원 민주당 온건파 의원 일부는 진보파의 강성 기조에 불만을 터뜨리며 인프라 법안만이라도 일단 통과시켜야 한다고 반발하고 있다.
다른 문제는 공화당이 우세한 주의 주의회가 소수 인종의 투표권을 제한할 수 있는 각양각색의 선거법을 앞 다퉈 제정해 민주당의 중간선거 전망에 암운이 드리워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를 방지하려면 자유로운 투표 접근을 가능하게 하는 연방 선거법을 제정해 주 선거법을 무효화해야 한다.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 진행 방해)를 아예 없애야 하나 상원에서 공화당의 필리버스터를 막을 수 있는 60석에서 10석이나 모자라는 민주당으로는 애당초 불가능한 숙제다. 전체적으로 볼 때 인프라 법안이라는 바이든 행정부의 추가적 입법 성과가 민주당 내부의 분열로 막혀있고 완강한 공화당의 저항으로 향후 민주당의 국정 타개책도 당장은 잘 보이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미군의 아프가니스탄 완전 철수 발표 후 카불이 탈레반에 의해 순식간에 함락되고 연이어 카불 공항에서 이슬람국가 호라산(IS-K)의 자폭 테러로 미군과 민간인을 포함한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하면서 바이든 대통령의 국정 운영이 상당히 뒤틀리게 됐다. 순조로운 아프간 철군 이후 이를 성과로 내세우며 민주당을 단합시켜 어떻게든 가을 정국을 타개해보려던 바이든 대통령의 구상이 안팎으로 심각한 도전에 처한 상황이다.
향후 바이든과 민주당 지도부가 어떤 식으로 의회 민주당 내 분파를 아우르고 공화당에 대처하며 국정을 운영할지 무척 궁금하다. 앞으로 있을 중간선거, 차기 대선, 그리고 트럼프 현상의 재연을 염두에 두고 보면 바이든 행정부와 의회 민주당의 일거수일투족이 좀 더 생동감 있고 의미 있게 다가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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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병권 중앙대 교수·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