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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에세이] 정신과치료, 목회상담, 민속신앙

2021-09-08 (수) 천양곡 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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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시대 때는 사람의 몸에서 넋이 나가면 큰 병에 걸리거나 미친다고 믿었다. 그래서 방황하는 넋을 불러 다시 환자의 몸에 돌려주는 일을 무당이 맡았다. 그리스 시대는 철학자가, 중세에 들어서는 성직자가 치료 바통을 이어 받았다. 18세기 산업혁명 이후에나 의학적 지식에 근거한 치료자로서 정신과 의사가 나타났다.

그 후 아무리 과학과 의학이 발달해도 무당은 점술가나 민속 치유자로, 성직자는 목회상담사로 이름을 바꿔 정신병 치료에 깊이 관여하고 있다. 과거 그들은 정신과 의사를 적이나 경쟁자로 여기며 서로 밀고 당기는 게임을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정신의학 역시 치유의 한계를 깨달으면서 모두가 동지와 협력자의 관계로 바뀌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20세기 중반 정신과 약이 발명된 후 정신병치료는 획기적인 상승세를 타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겉으로 나타나는 증상뿐 아니라 인간 내면의 심리적 문제들을 약물이 아닌 대화를 통해 해결해 보려는 노력이 일기 시작했다. 바로 프로이트를 중심으로 무의식의 갈등, 욕망 등을 의식화 시켜 환자의 마음을 편안케 해주는 정신분석치료가 그것이다.


정신분석 이론의 두 기둥인 프로이드와 융은 둘 다 무신론자였다. 과학적, 인과론적 경향이 강했던 프로이드는 인간을 신에게 의존하게 만드는 종교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반면 비과학적, 신비적 생각을 가졌던 융은 신을 믿지는 않았지만 신의 존재는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융은 지금 괴로워하는 심적 문제는 과거에 일어났던 어떤 사건(주로 성적 억압) 때문이란 프로이드의 인과론에 치중하기보다 앞으로 일어날지도 모르는 상황에 대비하려는 시도일 거라는 목적 지향적 생각을 펼쳤다.

융은 집단무의식 속에 인류가 긴 세월 함께 경험한 여러 사건들이 비슷한 상징으로 남아 있는 것을 원형이라 이름 붙였다, 이런 원형들이 자자손손 대를 거쳐 전해 내려오며, 개인 무의식 속에서는 꿈을 통하거나, 의식세계 속에서는 신화, 전설, 민속신앙 등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는 주장이다.

문제는 약물치료, 심리치료, 종교상담을 함께 해도 정신병 증세가 좋아지지 않는 환자들이 많아진 것이다. 결국 등장한 게 혼(영혼, 넋)이다. 지금까지 정신의학은 정신병을 이해하기 위해서 한 개인의 생물학적, 심리적, 사회적 요인 찾기에 초점을 맞췄다. 이제는 여기에 영적 요인을 하나 더 포함시켰다. 특히 기독교는 정신병으로 고통 받는 신자 상담에 융 심리학을 응용하기보다 기독교 근본주의 개념인 영혼의 구제와 내세의 희망에 더 힘을 실어주며 정신의학, 심리학과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조사 결과 근본주의 개념이 정신과 환자나 정신병을 가진 교회신자 모두 증상들을 좋아지게 하는 것이 보였다. 정신의학과 종교상담이 가는 길은 다르지만 환자 치료에 초월적, 추상적 대상인 혼이 중요한 이슈임을 알았다.

어느 사회학자 말대로 종교는 영혼을 인정할 때 빛을 낸다. 원시시대 때의 무당 역시 혼과 대화하는 의식이기에 단순히 미신이라고 비난만 할 게 아니다. 결론적으로 정신의학과 종교, 민속신앙은 각기 치유 선상의 끝과 끝에 대치하고 있는 게 아니고 가장 중요한 중간 선상에 함께 위치하고 있는 것이다.

<천양곡 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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