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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리바게닝의 거짓말 화법

2021-09-07 (화) 손경락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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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6월 뉴욕 맨해튼의 형사법원, 피고인 브라이언 프리맨은 동물학대 혐의로 기소되었지만 검사와 플리바게닝을 통해 동물학대죄 대신 무단침입죄에 대한 유죄를 인정하고 25일간 사회봉사를 하기로 합의했다. 실제로 남의 사유지에 무단침입을 한 적은 없었지만 동물학대범이라는 전과 기록을 피하고자 검사와 협상 끝에 얻은 결과였다.

이런 사실은 검사는 물론 프리맨의 변호사와 유죄 판결을 내린 판사까지 알고 있었고, 추후 사건을 심리한 항소법원도 알고 있었지만 항소심은 피고인이 거짓을 말했더라도 플리바게닝을 통해 서로 합의한 사항이기 때문에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어떻게 진실만을 추구해야 하는 법정에서 이런 ‘짜고 치는 거짓말’이 통용되는 것일까?

우리말로 ‘유죄협상제도’ 정도로 해석되는 플리바게닝은 수사 편의상 피고인이 유죄를 인정하거나 다른 사람의 범죄에 관련된 증언을 하는 대가로 검사가 형량을 낮추거나 가벼운 죄목으로 대체해주는 제도인데 한국에는 없고, 미국은 전역에서 이를 광범위하게 활용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굳이 유죄를 인정하겠다고 하는 사람에게까지 배심원 평결에 의존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고, 아울러 수사와 기소, 재판 최종심까지 소요되는 막대한 공적 비용도 절감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최근 탈세 혐의로 체포된 트럼프 재단 CFO 앨런 와이슬버그가 검찰의 플리바게닝 협상에 응해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해 불리한 증언을 할지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통계에 따르면 미국 형사 사건 중 97% 이상이 이 제도를 통해 해결되고 나머지 3% 정도만이 재판으로 처리된다고 한다.

하지만 아무리 수사의 효율성 측면이나 공적 비용절감 효과가 크고, 또 모든 사건이 다 그렇지는 않다고 하더라도 사법정의를 구현하기 위해 국가가 진행하는 엄정한 재판 과정에서 거짓말 화법이 공공연하게 통용되는 것은 여러 면에서 문제 소지가 많다.

미국의 플리바게닝에는 세 가지 거짓말이 존재한다는 뉴저지 럿거스 로스쿨의 테아 존슨 교수의 최근 발표 논문이 이를 잘 풍자해준다.

그 첫 번째는 프리맨처럼 범죄 사실에 대한 거짓말이다. 자신이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음에도, 또는 기소사실과 다른 범죄행위에 대해서 유죄를 인정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법적 절차에 대한 거짓말이다. 예컨대 변호사나 가족, 다른 이해당사자의 압력에 의해 유죄를 인정하면서도 자신이 변호사와 충분한 상담을 거친 후 자발적으로 유죄를 인정한다고 판사에게 거짓으로 말한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죄목에 대한 거짓말이다. 즉 형법상 존재하지도 않는 범죄에 대한 유죄 인정으로, 이를테면 과실치사 미수죄와 같은 것이다. A가 운전 부주의로 교통사고를 내 B를 사망에 이르게 한 경우 과실치사죄가 적용되는데, 고의성이 없는 사고 유형의 범죄라고 볼 수 있다. A에게 B를 살해하려는 범의가 없었고, 부주의 운전이 범죄행위를 위한 준비 단계도 아니기 때문에 법리상 과실치사 미수라는 것은 성립되지 않는다. 쟁점은 어디까지나 A의 부주의가 중대한 과실이냐 아니냐 하는 점인 것이다. 그런데도 법원은 과실치사 미수를 인정하는 모순을 스스로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사법정의 최고의 가치인 ‘진실 추구’와 정면으로 충돌하면서까지 거짓말 화법이 통용되는 플리바게닝을 어떻게 보완해 나가야할지 미국 법조계의 시름이 깊다.

<손경락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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