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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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중국해 통과하려면 사전에 신고하라고(?)

2021-09-06 (월)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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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레반, 탈레반, 탈레반…. 엄청난 쇼크였나. 2021년 8월15일에 벌어진 사태, 카불함락이. 미 언론의 관심은 여전히 온통 아프가니스탄에 쏠려 있는 것 같다.

워싱턴 인사이더들의 시선은 그러나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다. 인도-태평양지역, 더 좁히면 서태평양, 그 중에서도 남중국해다.

“우리는 중국과 심각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미국이 아프간에 갇혀 10년 더 꼼짝 못하는 상황을 중국과 러시아는 제일 좋아할 것이다.”


미군의 카불철수완료와 함께 20년을 끌어온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공식적으로 종료됐다. 바로 그날 그러니까 2021년 8월31일 바이든 대통령이 대 국민연설을 통해 한 말이다.

‘아시아로의 회귀’라고 했나. 오바마 행정부가 추진했던 해외전략 말이다. 그 정책은 미국이 중동의 늪에 빠져 좀처럼 진척이 되지 못했다. 바이든의 발언은 아프간 철군과 함께 미국의 외교^군사력을 이제 아시아에 집중하겠다는 신호로 베이징은 아연 긴장하는 기색이다.

“중국인들은 조기에 마음을 다잡고 서태평양에 대한 미국의 제국주의적 ‘산만증’발작에 대응할 준비를 해야 한다.” 9월1일자 중국 관영매체 환구시보의 사설내용이다. 아프간 철군 이후 미국에 대한 경계심을 여과없이 드러내고 있다고 할까.

이와 거의 동시에 나온 것이 남중국해 상황과 관련된 중국의 도발적인 일방 선언이다. 2021년 9월1일부터 중국이 자국 영해로 간주하는 해역에 들어오는 사실상의 모든 외국 선박은 사전에 신고하고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방침을 발표한 것이다.

중국 해사국은 “중국 영해에 진입하는 외국 선박은 배 이름과 콜사인, 위치, 위험화물 정보 등을 신고해야 한다”며 이를 어기면 법에 따라 대응한다고 밝혔다. 해사국은 잠수함, 핵추진함, 방사성물질 선적함, 원유^화학물질^액화가스 등 위험물질 선적함, 그리고 해상안전 위협 가능성이 있는 선박 등 5종류를 영해진입 보고 대상으로 정했다.

영해(領海)는 한 나라의 주권이 미치는 바다로서, 유엔해양법회협약(UNCLOS)은 해안 기준선으로부터 12해리의 해역을 영해로 규정하고 있다. 또한 군함을 포함한 외국선박이 평화나, 주권침해 행위 등을 저지르지 않는 한 ‘무해통항(innocent voyage)’을 보장하고 있다.

중국의 개념은 다르다. 중국 내수, 영해, 접속해역, 배타적 경제수역, 대륙붕 등 중국의 관할 수역은 모두 영해로 간주한다.


그러면서 베이징은 제멋대로 그은 해양경계선인 ‘남해9단선’을 근거로 남중해의 90% 해역에서 영유권을 주장하며 인공섬 조성과 함께 군사기지를 건설했다. 국제상설재판소(PCA)는 2016년 7월 9단선을 근거로 한 남중국해에서의 영유권 주장은 근거가 없다고 판결을 내렸다

이 중국식 논리에 따르면 남중국해는 물론 대만해협, 남쪽으로는 일본의 오키나와-미야코 해협에 이르는 동중국해, 또 한국의 이어도 너머 서해에 이르는 해역도 모두 중국의 영해이고 이 해역에 진입하는 외국 선박들도 사전에 중국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게다가 잠수함, 핵추진함 등의 선박 등을 콕 찍어 영해진입 보고 대상으로 지정했다. 그 의도는 뻔히 드러난다. 남중국해를 제 멋대로 영해로 만들려는 중국을 견제, 이 해역에서 ‘항해의 자유’ 작전을 펼치고 있는 미군 함정의 진입을 차단하겠다는 거다.

새삼 한 가지 질문이 제기된다. 왜 하필 이 타이밍에, 비교하자면 공로(公路)를 무단 점령하고 사전에 통행허가를 받으라는 무뢰한들의 행태와 다를 게 없는 일방적 선언을 하고 나섰을까. 미국의 의지 테스트용이 아닐까 하는 것이 그 한 관측이다.

미국의 중국 견제의 핵심 주제는 홍콩과 신장사태로 대별되는 인권문제와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으로 표현되는 남중국해 문제로 나뉠 수 있다. 인권은 가치의 문제이고 남중국해는 전략적 사활이 걸린 문제다.

그러니까 베이징은 미국이 카불함락 쇼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태에서 전략요충인 남중국해 통제권 강화 선제적 공세에 나섰다는 분석인 것이다.

또 다른 관측은 일종의 지록위마(指鹿爲馬)계책의 원용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이는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지의 분석으로 이번 조치가 미국의 역내 동맹국을 비롯한 관련 당사국들이 친중인지, 반중인지를 확실히 가려내는 지표로 쓰일 여지가 큰 것으로 내다본 것이다.

다른 말이 아니다. 미국이 직접 타깃이라기보다는 한국을 비롯해 베트남,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 역내 국가들에게 태도를 분명히 하라는 협박용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베이징의 이 트릭은 먹혀들까. 답은 ‘예스’이자 궁극적으로는 ‘노’로 보인다. 중국의 눈치를 보는 나라가 한둘이 아니라는 점에서 우선 부분적으로는 ‘예스’다.

반중정서가 전 세계적으로 계속 확산되고 있다. 동시에 남중국해 문제에서 중립입장이었던 유럽열강이 중국견제로 급선회하고 있다. 이와 함께 대륙유럽의 나라들도 잇달아 남중국해로 전함을 파견하고 있다.

항모전단을 파견한 영국에 뒤이어, 프랑스, 독일도 핵잠함 등 주요 전략자산을 서태평양 해역에 전개, 미국의 중국봉쇄 작전에 동참하고 있는 것이다. 이 점에서 답은 ‘노’인 것이다. 뭐랄까, 전랑외교니, 어쩌고 하면서 한껏 오만을 떨어온 대가를 지불하고 있다고 할까.

그건 그렇다고 치고, 당장의 관심사는 문재인 정부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하는 것이다. 중국이라면 극진한 ‘사대(事大)의 예’로 모셔왔으니 미리 알아서 기는 그런….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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